BEHIND

사진과 글, 영상으로 근대를 성찰하는 작가 박찬경

2017-09-29 | VIEW 1215

국립현대미술관은 9월 22일부터 2018년 1월 21일까지 과천관 1원형전시실에서 <역사를 몸으로 쓰다>전을 개최한다. <역사를 몸으로 쓰다>전은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신체와 몸짓을 활용한 예술이 당시의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을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초점을 맞춘 국제기획전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9월 21일, BEHIND는 이번 전시에서 신작 ‘소년병’을 발표하는 박찬경 작가를 찾았다. 박찬경은 분단과 냉전, 민족 종교문화 등을 통해 한국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온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다.

한국 근대사의 쓰라린 민낯을 조명한 작가
그의 첫 데뷔전은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이뤄졌다. 작품명은 ‘1997년 블랙박스: 냉전이미지의 기억’. 제목에서 예측할 수 있듯 냉전과 분단을 다룬 프로젝트다. 박 작가는 논문 형태의 텍스트와 일상 사진들을 뒤섞은 방법으로 전쟁기념관, 북한 공비 보도사진 등에 드러난 냉전 이데올로기의 이미지들을 파헤쳤다. 첫 작품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는 분단과 냉전, 독일에 사는 한국 광부들, 충남 계룡산 신도안에서 활동했던 무속신앙의 흥망사 등을 다룬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근대사의 쓰라린 민낯을 조명하는 일관성 있는 행보를 걸어왔다.
전쟁과 이념, 이데올로기와 상처, 혼돈이 뒤얽힌 근대사는 현재까지 살아 숨쉬고 끝없는 영향력을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다. 그러나 각박한 삶의 쳇바퀴에 놓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면면을 들여다 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관심이 없으니 의문을 갖지 않고, 의문이 없으니 일종의 성찰도 없다. 박 작가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물음표를 던지고, 이에 대한 자신의 발상과 느낌표를 작품 속에 풀어낸다. 주제도 표현 방식도 각각인 지난 20여 년간 그의 모든 작품은 사진과 글, 영상으로 근대를 성찰한다는 큰 틀 안에 놓여있다.

북한을 향한 시선에 의문을 던진 작품 ‘소년병’
최근 작품인 ‘소년병’은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해서 베일을 벗는 박 작가 최초의 신작이라 의미가 더욱 깊다. 작품은 6.25 전쟁을 직접 경험한 박 작가 어머니의 기억에 시작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이상한 게 말이다. 북쪽에서 인민군이 내려와서 무서워서 숨고 그랬는데, 나가보니까 너처럼 앳된 애들이 총을 메고 인민군이랍시고 와 있더라”고 회상하셨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던 소년에게 어머니의 경험담은 충격이었다. ‘인민군이라면 뿔이라도 달린 험악한 인상일 줄 알았는데, 평범한 소년이었구나’라는 그때의 충격은 박 작가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드문드문 떠올랐다.
“우리한텐 확실하게 각인된 북한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강하며 폭력적이고 고집스럽죠.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지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 관한 가장 약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품 ‘소년병’ 속에서 인민군 소년은 숲 속을 걸어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하모니카를 불다가, 소변도 보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우리는 미국 사람이 햄버거 먹고 바다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잖아요. 그러나 바로 옆 동네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죠. 북한은 항상 엄청난 의미가 부여되는 곳이기에 우리는 더욱 무의미를 참지 못합니다.” ‘소년병’이 담고 있는 스토리와 장면은 이처럼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남한에서 정형화되었던 북한을 향한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오가다
소년병을 제작하며 가장 재미있던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박찬경은 “필름은 무한정으로 찍으면 예산을 초과하기 때문에 정해진 롤만큼만 촬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훨씬 아껴서 찍었죠. 그만큼 한 컷 한 컷에 정성과 심혈을 기울입니다. 또 찍은 즉시 이미지를 볼 수 없고 스캔을 받아야만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기다리거나, 아껴서 찍는 과정이 색다른 재미를 주더군요”라고 답했다. 이렇듯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된 소년병 사진은 디지털 스캔과 비디오 편집을 거친 후 빔프로젝터로 상영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섞여 있는 작업인 것이다. 반면,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예산이었다. 이는 비단 박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예술가들이 떠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 속에서 어렵게 탄생한 이들의 작품은 각박한 현실 속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중요한 문제들을 보고 듣게 한다.

근대사 성찰의 메시지는 계속될 것이다
박 작가는 신작 ‘소년병’ 외에도 2005년 쌈지스페이스에서 선보인 설치영상물 ‘비행’과 2000년 미디어시티 서울 기획전에서 발표한 그룹전 작품을 통해서도 남북관계에 대한 색다른 각도의 접근을 보인바 있다. ‘비행’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하기까지의 비행 영상들을 10분 동안 초저속으로 튼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북녘 땅과 사람들은 초현실적 오브제로 변한다. 2000년 미디어시티 서울 기획전에는 북한 영화 촬영소의 서울거리와 남한 군부대의 가상 시가전 훈련장 등의 사진을 대비시킨 ‘세트’ 연작들을 발표, 분단에 대한 색다른 각도의 접근을 유도했다.
한국 근대사의 흔적을 낱낱이 해부하고 그 퍼즐을 다시 맞추며 독창적 작품세계를 펼친 박 작가는 친형 박찬욱 감독과 만든 창작팀 파킹찬스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으로 2011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최고상 황금곰상을 받았다. 이어서 지난 4월과 6월에는 독일 ‘세계 문화의 집’에서 열린 그룹전 ‘호랑이 두세마리’, 스위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행사 아트바젤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그가 그려낸 근대사 성찰의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 작업을 마친 박찬경은 곧이어 다음 전시 준비로 들어간다. 그는 내년 3월에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하는 파킹찬스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형제가 함께 만든 신작 단편영화를 포함한 영상 작품들과 각자 작업한 사진 작품들이 공개된다.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역사의 목소리를 전해온 그가 이번엔 어떤 물음표를 던지고 또 어떤 느낌표를 가져올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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