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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플랫폼의 확장, 벽이 사라진 건축의 세계

송하엽 | 아트뮤 편집위원
2016-09-13 | VIEW 5202

빈 캔버스 또는 단색 캔버스는 캔버스화의 물리적 한계에 대해 이슈를 던진다는 점에서 개념예술로 자리매김했다. 사각 캔버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든 프랑크 스텔라(Frank Stella)의 다각형 캔버스 역시 고정관념을 벗어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벽화에서 캔버스화로 진화한 이후 이에 대한 질문은 급기야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화를 낳았다.




벽이 없는 바닥을 위한 건축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그림의 선적인 경험과 이우환의 단순한 모노화가 주는 조용한 경험은 회복(Redemp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념적인 캔버스화가 과거 벽화에 둘러싸인 분위기를 재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페인팅이 벽을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건축은 벽보다는 바닥이 중심이다. 회화가 벽을 대신하거나 다른 어떤 기계가 벽을 대신할 수 있어도 바닥은 바꿀 수 없는 건축의 기본이다. 벽이 생존과 유희의 본능을 채워준다면, 바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이다.

인간이 최초로 ‘사회적인’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무엇부터 만들었을까? 지붕? 바닥? 아니면 벽? 생존을 위해 지붕과 벽부터 만들었겠지만, 사회적인 공간은 바닥의 레벨링(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 제일 중요했다. 불구덩이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내리기도 하고,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고르며, 연장자의 자리를 위해 바닥을 높이기도 했다. 신전을 짓기 위해 바닥을 평평히 고른 것은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구성원이 평등한 바닥을 공유하는 것만큼 민주적인 시작은 없다. 정치적인 협의는 평등한 조건에서야 싸움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이 거주를 위해 평평한 곳을 찾는 일은 농경사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시를 이루는 기본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은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단부, 예수가 시장에서 맞닥뜨려 행상을 걷어버린 신전의 기단부, 불국사의 석축으로 만들어진 절터도 평평하다. 평범, 평균, 평야, 평화, 태평, 지평 등등 평평한 것은 서로 동등하고 견제가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중 지평이라 말이 수상하다. 평야를 보거나, 바다를 보거나, 한 인간의 정신적 세계를 엿보았을 때 느껴지는 광대함을 뜻하니까 말이다. 마음의 지평은 지구의 우주를 향한 지평과 동일시된다.

De Trap by MVRDV


건축가는 지평을 어떻게 형상화할까? 미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인디언이 살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수평선을 동경했다. 건축 작품에 지평선을 닮은 수평선을 강조하며 평지붕까지 만들었고 주로 수직을 선호한 유럽건축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막히지 않은 수평적인 모습의 평면도는 민주적인 평면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라이트의 벽과 창은 숲을 연상시키는 패턴화된 모습으로 실내에서 민주적인 평면이 만나는 벽을 장식한다.

포르투갈 파티마에는 성모 발현한 성지가 있다. 성지의 큰 광장은 성모 발현을 기리는 미사를 위해 아주 크게 만들어졌다. 이 너른 바닥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광장의 왼편에 있는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 길이다. 이곳은 순례를 끝마치기 위한 자들이 무릎으로 기어 오는 길이다. 기적의 장소를 향해 가는 광장의 평평한 바닥은 재료 그 자체로 강조되어 있다. 거친 광장의 바닥에서 비어 있는 대리석 길은 현대에 재현되는 신적인 플랫폼을 이루고 있다.

포루투갈 파티마 성지 무릎길





도시의 새로운 가치


작은 건물에서 수평선처럼 바닥을 강조하는 방법은 벽을 없애는 것이다. 벽화에서 캔버스화로 발전한 것처럼 벽이 없는 건축적 변화는 바닥에 대한 강조이다. 건축물에 경사진 바닥을 많이 사용한 렘 콜하스(Rem Koolhaas)도 바닥에 대해 탐구했다. 벽을 없앤 건축 중 인상적인 모습은 시게루 반(Ban Shigeru)이 일본에 설계한 커튼하우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연인지 이 집은 큰 커튼을 걷으면 넓은 테라스가 있어 바닥이 휑하게 드러난다. 기능적으로 가정집에서 바닥이 갖는 의미는 깊게 탐구되지 않았다. 만약에 이 집에서 파티를 자주 연다면 바닥에서 벌어지는 모임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Miami Parking Garage by Herzog and de Meuron


헤르족 앤 드뮤론(Herzog and de Meuron)이 마이애미에 설계한 주차장 건물은 본격적으로 벽이 없고 바닥이 강조되었다. 이 주차장에서 너른 바닥과 꼭대기 층의 높은 천정고를 이용한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이곳의 주인은 맨 꼭대기에 살면서 웨딩이나 이벤트를 위하여 한 층을 통째로 임대할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은 다운타운의 야경을 벽 삼아 이벤트를 즐긴다. 마치 로프트나 펜트하우스에서 이벤트를 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는 벽이 없는 바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도심 공동화가 심한 미국 대도시의 풍경을 즐기는 레벨로 쓰는 것이다. 이 새로운(주차장 같지 않은) 주차빌딩을 위하여 개발자는 전 세계의 스타 건축가 10명을 인터뷰한 뒤 헤르족 앤 드뮤론을 선택했다. 다양한 시도 끝에 도시의 레벨링을 강조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벽이 없는 바닥의 건축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거주공간이 아닌 대안공간 정도 되어야 가능하다. 건축가 김인철이 설계한 파주의 파티(PaTI)는 건축주 안상수 디자이너와의 일탈을 추구하는 교감과 경제성 그리고 발코니 공간의 확장에 대한 김인철의 학습에서 비롯되었다. 대학교육을 대안 하는 디자인 교육기관의 성격은 보다 진취적이고 가식적이지 않은 까닭에, 김인철이 마련한 공간은 예사롭지 않다. 뱅글뱅글 돌아가며 각 층의 바닥은 50cm씩 올라가고 각각의 플랫폼이 하나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구획한다. 창조적인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는 벽을 만드는 대신 플랫폼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PaTI by Kim Inchurl

PaTI section drawing


파티는 완성된 집보다 파빌리온과 같이 가설적이다. 건물의 퍼포먼스가 최우선 되어 단열성능과 밀폐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파티는 건축의 개념적인 모습인 바닥에 대한 탐구, 즉 진화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바닥을 강조한 건축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기술적 편의를 버리고 바닥의 의미와 불확정적인 사용을 강조하는 것은, 도시의 새로운 가치를 불러오는 과감함에 대한 도전이다.




개인이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


모노크롬 회화가 드러내는 단순함과 캔버스화에 대한 개념적인 접근은 좁은 캔버스의 표면을 최대한 단순하게 보이며 캔버스 그 자체의 한계에 대하여 의문을 던진다. 점점 더 벽화로 발전하며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은 의미에 대한 강한 수렴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그동안 기술적 편의의 발전을 담아 왔던 벽을 점차 걷어 없애며 바닥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강조로 보인다. 2000년대에 유행했던 네덜란드 건축가들의 경사진 바닥에 대한 탐닉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에 층으로 나누어져 있던 바닥의 형식에 층으로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 층간의 연결 상태를 만들었다. 건물의 지붕을 도시의 플랫폼으로 만든 경우 역시 로테르담의 도시 축제에서 일시적인 구조적 변화로 볼 수 있다.

Kazimir_Malevich_Suprematist_Composition


로테르담은 2차 대전에서 황폐한 과거에서 벗어나 75년 만에 재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건설한 기차역 광장에 있는 오래된 건물 옥상을 시민에게 개방했다. 공사장 비계를 이용하여 180개의 계단(de Trap)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옥상을 개방해 도시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게 한 것이다. 별것 아닌 것을 별것으로 변모시키며, 공짜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제공했다. 이처럼 도시와 건물의 플랫폼은 어쩌면 모노크롬 회화의 그것처럼 불확정적으로 칠해져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너른 캔버스 같은 공간은 언젠가 새로운 협의를 위해 개개인에게 공동감을 각인하는 공간으로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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