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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올해의 작가를 만나다

2016-09-13 | VIEW 1360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전시의 주인공인 김을, 백승우, 함경아, 믹스라이스(양철모, 조지은)를 만나 영상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호에는 그 내용을 활자로 정리해 게재한다. 동영상은 인터뷰 내용을 5분 남짓으로 축약하여 재편집한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정례 전시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되었던 〈올해의 작가〉전을 모태로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2년부터 SBS 문화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창조적인 독창성을 보여줄 역량 있는 작가들을 후원하는 수상 제도로 변경,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올해의 작가상〉전은 매년 관객들과 미술계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어내며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대표 수상 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과 담론을 주도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예술세계를 널리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의 작가상> 심사위원은 바르토메우 마리(국립현대미술관장), 캐롤린 크리스토브 바카르기에브(카스텔로 디 리볼리 미술관장), 미카 쿠라야(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윤재갑(상하이 하오 아트 뮤지엄 관장)으로 후보작가 8명(혹은 그룹)을 추천하고 그 중 4명(그룹)을 선발했다.




아버지가 한학자이자 서예가였다. 그림과 글씨에 재능을 보였지만 회화과에 진학하지 않고 디자인, 공예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금속공예에도 흥미가 있었으나 순수회화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결국 대학원 졸업 후 몇 년 간의 어려움을 각오하고 순수회화로 돌아섰다. 제도권 미술계에 진입하기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인맥도 경험도 없었다. 목수도 그때부터 시작해서 오래 했지만 생계 때문에 한 건 아니었다. 바닥까지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처음에는 나를 한 번 그려보자는 쉬운 선택을 했다. 의식처럼 100여 장 넘게 나를 그렸다. 그림에 대한 감이 그때 생겨났다. 자화상을 그리다 보니 혈류, 조상의 흔적이 얼굴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 가족사를 ‘혈류도’라는 제목으로 작업하게 되었다.

1998년 작업실 화재를 계기로 그 동안의 작업 400여 점이 소실되었는데 정말 시원했다. 180도 변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것, 주제라는 것, 나 자신과 가족사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이었다.

1950년대 근대화 시대와 현대 디지털 시대의 간극이 있는데 내게는 그 모든 기억이 머릿속에 차 있었다. 나의 내면 세계를 현재와 만날 수 있도록 꺼내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로잉 밖에는 표현 방법이 없었다. 드로잉이라는 매체는 그림의 세계에서는 그림 이상의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드로잉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드로잉을 하는 태도가 더 중요했다. 자유롭고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그리는 게 드로잉에 대한 내 기준이다.




올해의 작가상 2016 전시 개념


작업계획서 제출할 때 드로잉으로 내 전모를 드러내겠다고 썼다. 결국 전모까지는 아니고 중간 정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작업실을 약간 축소시킨 뒤 건축 전시를 한 것은 드로잉의 과정에서 겪었던 나의, 내적 외적 이야기를 작업공간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트와일라이트존, 중간지대로 이름 붙였다. 모든 것의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그 작업실의 창을 통해 내다볼 수 있는 즉 우주의 심연과도 같은 배경 위에 배치된 1,450여 개의 드로잉. 치열하고 집요한 드로잉 작업은 나의 실재하는 현실과 가상 현실의 경계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김을에게 예술이란?


시대와 관계없이 예술에는 원형이 있다. 예술가는 자기 모든 것을 걸고 예술의 길을 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나도 모든 것을 걸고 그림을 그려왔다. 비록 현실이 물질을 기반으로 돌아가지만 그 바탕에는 철학과 개념이 있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학교 3학년 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미대생 삼촌이 작업 환경을 만들어 놓고 군대에 간 덕에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진학과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상업사진가로 활동해 제법 성공했지만 내가 원하는 게 이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사진가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거듭나고자 노력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진가로서 나의 수명은 끝이 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출발점이 되었다.




블로우업 시리즈, 유토피아 시리즈


내 관심은 사진에 대한 집중이 아니라 매체에 대한 집중이었다. 북한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적이 있다. 사진가의 관점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많이 남겨보고 싶었다. 그런데 작업 내내 가이드가 나를 따라 다니며 찍어야 할 것과 찍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정하다 보니 내 역할이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프랑스 작가의 북한 다큐멘터리사진전 속 어떤 여자아이가 4년 전 내가 찍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몰랐던 사진 속 이야기였다. 그래서 북한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 누구도 발견 못했던(나를 포함한) 부분을 찾아 확대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게 블로우업(Blow up) 시리즈이다.

블로우업은 '확대하다, 폭발하다'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데 작업자체는 이미지의 확대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폭발의 전과 후라는 의미도 있다. 즉 이미지가 가진 의미가 폭발을 분기점으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점을 넘어섰다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있다.

유토피아 시리즈는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북한당국에서 찍은 사진을 입수해 진행된 작업이다. 그 전까지 내게 사진은 대상을 전제로 존재해 왔다. 즉 시공간의 제한이 있었다. 내가 존재했던 공간에서 나는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혹은 내 가 본 적 없는 시공간은 찍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실제로 찍지 않았더라도 과거의 이미지를 수집하다 보면 내 생각과 맞는 지점이 있는 것을 차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는 내게 사진전이 아니다. 사진매체전이다.

'공백매체(Blank Memory)'라는 주제를 잡았는데 보통 SD 카드 같은 메모리를 사면 64기가 용량 중 60기가 정도를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는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걸 공백영역이라 부른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앞으로 어떤 맥락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매체의 미래를 가능성으로 열어두고자 했다. 이전 작업이 내가 찍은 사진의 개인 아카이브를 훼손하는 작업과 타인의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차용하고 이탈, 훼손시켜 결국 내 아카이브에 편입하는 과정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백승우에게 미술관이란?


미술관은 심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다. 그 다른 세계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고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점은 함경아 인 어 스몰타운


1999년 즈음에 함경아 인 어 스몰타운(함경아 In a small town)이라는 노트를 만들었다. 증명서, 졸업장, 토플성적증명서까지 내 이름이 들어간 모든 것을 모아 만든 노트인데 그 속에서 나 함경아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규정되어 왔을 뿐 총체적인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세상을 만나기 위해 길로 나섰다. 내게 온 세상은 정보로 가득 찬 도서관 같은 곳이다. 그것을 관찰하고 사유하며 작가의 연금술사적 마인드로 표현하는 실험실인 셈이다. 현재의 시공간을 살아가면서 의아한 점, 표현하고 싶은 점, 중요한 점이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작업해 왔다.

나는 경험하고 바라보는 모든 것이 안으로 들어왔다가 곱씹고 소화하고 다시 배설된 후에 내게 남은 찌꺼기가 결국 정체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그 동안 해 왔던 그림과 나를 분리하는 첫 시도로 체이싱옐로우(Chasing Yellow)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길로 나서 노란 옷을 입을 사람을 쫓아가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었다. 그전에는 매달 신작을 만들고 개인전을 했다. 그렇게 사는 삶에 회의를 느꼈었다. 세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프로젝트를 계획해서 실행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니 다양한 일이 생겼는데 보통 사람과의 소통은 패러다임이 되었다. 미술계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층위를 연결해서 드러내고자 했다. 의미가 있었다.




언리얼라이즈드 더 리얼 (Unrealised the Real)


이번 전시에 세 가지 작업을 출품했다. 메인 작업은 언리얼라이즈드 더 리얼(Unrealised the Real)로, 지금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품 후원금이 최대의 가치를 갖게 하고 싶었다. 죽음을 각오한 용기로 망명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탈북을 지원해 주고 사소한 소리조차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되어 불안을 떨게 되는 삶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면 또 다른 메시지를 얻게 되지 않을까 싶어 영상 기획물을 생각했다.

작업의 소제목이 ‘29,543+1명, 909,084km, 15,000달러, 2016'. 탈북자의 수 29,543명과 내가 영향을 주는 1명, 탈주의 거리라는 뜻이다. 탈북의 과정은 순탄치 못하다. 정치적 상황, 브로커 등 20가지의 변수가 있다. 그래서 셔터가 내려지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얘기가 오고 가는 불안한 상황을 맞게 된다.

‘악어강 위로 튕기는 축구공이 그린 그림’을 나는 사커 페인팅이라고 부른다. 탈북한 뒤 유소년 축구단 공격수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친구와 작업했다. 그 친구와 어머니의 꿈이 담긴 축구를 통해서 발산되는 에너지, 감정, 공에 실린 무게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축구와 미술은 유사점이 많았다. 긴 역사적 배경이 있고 유희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고 거대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바람에 정작 주인공인 작가와 선수들이 소외되는 상황도 그랬다.




현시대를 사는 예술가의 정체성


세 번째 작품이 군사용 위장 패턴인 카무플라주(camoflauge)를 탈색해서 3차원적 공간으로 배치한 언카무플라주(Uncamoflauge)이다. 카무플라주는 1·2차 세계대전 때 예술가들이 모여 디자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군사용이지만 나는 그 모양이 추상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적 상황 속에서 예술가는 개인이나 예외가 아니다. 그속에서 연결을 끊을 수는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는 하나의 씨실 날실처럼 직조되어 있다.







믹스라이스라는 이름과 그간의 작업


처음에 이주노동자와 작업을 행위예술로 일부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아시아 농경문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분들이었다. 어느 날 잡담을 하다가 믹스라이스 잡곡밥이랄까 섞인 쌀이라는 의미가 재미있어 붙이게 되었다. 지금은 두 명이지만 2002년 시작 당시에는 네 명이었다. 작품을 하겠다는 의도보다는 뭔가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주노동자 센터를 직접 찾아갔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보여진 모습과 실제의 간극이 궁금했다.

2년 반 정도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비디오 클래스를 만들고 지역축제에서 상영활동을 하다가 그 중간에 리턴(Return)이라는 프로젝트를 했다. 이주노동자 귀향기 같은 것이었는데 한국과 세계화가 저개발국가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MDF는 ‘마석동네 페스티벌’의 약자이다. 이 이야기는 ‘불법인생’이라는 연극을 이야기하고 가야 한다. 마석가구공단에서 방글라데시 친구 알럼이 우리에게 연극 배우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그 당시 우리는믹스라이스의 미래를 두고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제안을 하던 것과는 반대로 이주노동자가 만든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연극의 내용은 이주노동자 치부를 드러내는 거였고, 한국 사회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그들의 언어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MDF의 시작점이었다.

알럼은 이후 우리에게 락페스티벌을 하고 싶다고 했고 방법을 찾다가 공장 옥상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락페는 학자와 이주노동자, 형사와 이주노동자, 목사와 신부처럼 대립된 위치의 사람들을 모으는 페스티벌이었다.




전시 주제는 이주의 현장


요즘은 1000년 된 나무도 인간을 따라 이주한다. 예전에는 나무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아파트 가격은 올라가고 사람들은 자기만의 마당 정원을 꿈꾸게 되었고 결국 1000년 된 느티나무가 반포의 어느 아파트단지에 심어지는 식으로 이주할 때 마다 나무에 서린 1000년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나무만 옮겨진다. 원래 있었던 마을 공동체가 현대화의 개발과정에서 서로 사이가 나빠지거나 공동화되면 그 나무가 처분되어 이주하게 된다. 거대자본이 공동체, 사람, 나무 모든 것을 재배치하는 식의 개발은 폭력적인 자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




믹스라이스에게 예술가란 ?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더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타자와 어떤 방식으로 지금과 다른 관계 맺기를하려 하는지 유심히 봐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미술관은 미술 행위를 보여주는 공간이자 세계와 소통하는 공간이면 좋겠다. 어떤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이 많은 곳이 미술관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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