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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인간적 도시와 인프라텍처

송하엽 | 아트뮤 편집위원
2016-11-16 | VIEW 1253


인프라텍처(Infra-tecture)와 도시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건축적 변모

건축이 환경을 규정하는 창의적인 예술로 인식되는 요즘, 건축을 아우르는 도시와 공간의 환경에도 관심도 늘고 있다. 국내 웹엔진에 요리, 여행 외에도 Places, 즉 장소에 대한 코너가 생기는 등 통합적인 공간환경에 대한 욕구가 팽배해 있다. 잘 만들어진 환경에서 걷는 것은 풍요롭지만 올림픽대로 옆 보행로를 걷는 기분은 영 아닌 것을 안다. 고가도로 밑을 가거나 한강 둔치를 가기 위해 토끼굴을 지나가는 것은 무심하며 빨리 지나가고 싶다. 유럽의 신생 지하철 역사 공간의 건축적 창의성은 우리의 천편일률적인 지하철 공간과는 천지 차이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토건 국가 스타일의 지하철 공간을 지니고 있다.




스피드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인프라스트럭처


르 꼬르 뷔지에(Le Corbusier)는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세계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높이에서의 도시 경험에 대해 경탄했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본 지구, 대서양을 건너는 배를 타고 바라본 수평선, 차를 타고 재빨리 지나가는 풍경 등 근대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교통 인프라로 경험하며 묘사했다. 스피드가 중요해지면서 중세도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신속한 속도로 접근할 수 있는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그런 건축과 도시를 위한 고속도로, 항만, 댐 등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가 갖춰졌다. 새로운 인프라스트럭처가 새로운 도시환경을 만들었지만 도시의 인간적 보행체계에 대한 고려보다는 부를 생산하기 위한 도시화라는 코드가 더 중요해졌고, 속도는 지금도 도시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새로 만들어진 KTX, GTX, SRT 등등 도시를 잇는 자기부상열차에 의해 새로운 역세권이 형성되고 도시는 땅 위와 땅밑 8m 아래와 더 깊이 들어가 32m 아래에서 새로운 인프라를 수혈을 받으며-외과수술을 받은 듯-변하고 있다.

1909년 이탈리아의 퓨처리즘 운동은 시인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가 프랑스의 저널,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미래에 대한 매니페스토를 제시하면서 등장했다. 과거와 당대의 계몽과 합리에 의해 불협화음이 생긴 당대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해, 당대의 근대화에 대한 가치가 순수하게 이뤄지기 위해서 젊음, 산업, 기계문명, 속도 등의 요소를 순수하게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그 순수성은 정치성향에서도 급진적으로 나타나 파시즘이나 국가사회주의에 옹호하여 퓨처리즘 멤버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다. 그들의 정치적인 코드보다 건축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산텔리아(Sant'Elia)의 드로잉에서 묘사된 새로운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건축적인 디자인이다. 발전소, 기차역, 고층빌딩 등이 새롭게 그려졌으며, 이는 신대륙 미국에서 더 크게 지어지는 공장, 철도 역사 등에 대한 반영이다. 그러나 후버댐, 고속도로, 하이라인 화물열차길, 현수교 등등 미국에서도 지어지는 인프라스트럭처는 기존의 자연, 도시환경과는 전혀 다른 미학적 느낌을 준다. 긴장감 속에서 한가로이 담소를 나눌 기분이 들지 않는 장소로서, 뷰티풀이라기 보다는 기계미학의 숭고함(Sublime)이 느껴진다.

Robert Moses vs. Jane Jacobs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도시에서 도시 인프라와 큰 주거단지가 만들어지는 현상에 대한 비판은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대급부적으로 도시생활의 작은 삶의 경계를 강조하는 골목의 삶에서 드러난다. 작은 순간의 강조는 제이콥스가 비판하던 뉴욕 시의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든 도시계획가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가 만든 브롱스 고속도로나 남쪽 맨해튼 고속도로 등 지금도 뉴욕시에서 비판 받는 도시 분리 현상과 젠트리피케이션(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도심 지역의 노후한 주택 등으로 이사 가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속한 시설들과 대비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시가 탈바꿈 할 때부터 인프라스트럭처는 대도시에서 비호감적인, 위압적인 시설을 양산해왔다. 만들어진 인프라스트럭처에 따라서 건축은 땅따먹기 형식으로 잘린 땅에 점유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한때는 '네모난 세상'이라고 비관되는 분위기를 만들 정도였다. 모제스가 만든 고속도로와 큰 건물에 의해 잘린 마을을 보고 슬럼화된 지역을 몸소 경험하게 된 제인 제이콥스는 대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글을 쓰며 본격적으로 건축학교에서 특강을 하며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에게 문필로서 영향을 주게 된다. 마스터플랜과 인프라스트럭쳐는 안 좋은 것으로 취급되고 보행 거리 내에서 마을을 즐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대안적으로 추천되었다. 그러나, 루이스 칸과 같은 건축가들은 보다 인간적인 도시를 위해 일방통행의 도로와 주차타워 등의 대안을 만들며, 인프라스트럭처의 영향을 최소화 하고자 노력했다.

스피드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인프라스트럭처는 주민의 행동반경을 고려해보면 엽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마을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다. 인프라를 탓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면밀한 시뮬레이션에 의해 철거한 고가도로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프라는 우리를 순식간에 A에서 B지점으로 옮겨 놓으며 핸드폰 화면을 탐닉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Nothing Wrong, 이상하게 여겨질 만한 일이 없다.




무의미한 정크스페이스의 대안



Rem Koolhaas Junkspace


OMA의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인프라스트럭처가 건축보다 더 중요하다.”라며 도시와 자연의 삶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환경적 변화를 개개 건축물보다 더 중요시했다. 그렇지만 전 세계를 도시화한 결과 우리를 A에서 B지점, B에서 C 등등 끝없이 연속적으로 옮겨주는 인프라스트럭처로 연속된 정크스페이스(Junk Space)만 넘쳐나고 있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도 주었다. 정크스페이스란, 우리가 만들어낸 공간을 편리하게 하는 시스템인 에스컬레이터, 에어콘 등이 끊임없이 연속되는 도시공간으로 그 안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마트, 영화관, 푸드코트, 커피숍이 있는 거대한 한 역세권의 인프라공간에서 시간만 때우게 되는 주말의 일상을 일컫는다. 역이라는 인프라는 있지만 공간은 무의미한 정크스페이스인 셈이다.

이에 앞서 건축학자 케네스 프램튼(Kenneth Frampton) 역시 거대형태(Megaform)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20세기말에 등장하는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 규명했다. 역과 같은 인프라를 포함해 큰 구역의 건물이 건축적으로 창의적인 모습을 지닌 거대한 건축물 말이다. 렘 콜하스의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프램톤의 형태적 인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 시스템과 자본 그리고 대규모 개발을 가능케 한 법규 그 탄생의 결과이다. 인프라스트럭처나 메가폼이 19세기가 만든 올망졸망한 도시의 저속도를 고속도로 바꾸어 놓았지만 그 시스템에 마음먹은 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며 또한 무기력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인프라텍처는 역이나 기차 길과 같은 인프라가 있는 곳일지라도 건축적으로 인프라의 생경함이 무마된 곳으로 속도 보다는 장소를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보행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인프라스트럭처, 메가폼, 또는 정크스페이스가 만들어 놓은 스피드가 단축되어 캡슐화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탈피하게 한다. 이미 만들어진 도시공간에 화물의 신속배송을 위해 20세기 초 맨해튼에 새롭게 형성된 하이라인에 빼앗긴 도시공간은 그 수명이 다한 후 시민들에게 공짜 공간이 되며 새로운 보행의 레벨을 만들었다.

Kings Cross Station Development


영국의 킹스크로스역 근처에 주목 받지 않던 트레인 야드는 한 곳으로 정리되고, 그 자리에 새롭게 사무소, 학교 등이 입주하며 공공 공간과 자연이 어우러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일본과 홍콩의 철도 역세권의 개발은 입체도시적으로 발전하여 보행은 찻길 위의 레벨에서 만들어지며 찻길 위로 도시를 연결한다. 이렇게 기존의 인프라를 공간적으로 변모시키며 슬로우한 시간을 되찾는 것이 인프라텍처라 할 수 있다. 찻길이 사람길이 되고, 도시의 버려진 시설이 새로운 공공 공간이 된다. 최근 지가(地價)가 급등한 로스앤젤레스의 SCI-ARC 건축대학이 있는 기찻길 옆에도 400m 길이의 아파트가 생기며 버려진 공간에 새로운 주거 공동체가 생기기도 했다.




스피드를 벗어난 인프라텍처



Kenneth Frampton Megaform


서울은 강북에 길게 뻗어 있는 세운상가의 보행로 재연결 작업은 메가폼으로 남은 지금의 세운상가군을 인프라텍처화 하는 것이다. 또 한강에 제안 가능한 여러 보행교도 한강 둔치와 다리를 연결해 보행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한강을 건너는 속도를 줄인다. 서울역 고가도로 보행화 사업도 유닛화 된 동그란 화분이나 공간들이 랜덤하게 배치되는 당선안에 담겨있다. 그러나 보전과 더불어 군데군데 새로운 보행연결을 컨텍스트적으로 새롭게 만들어 연결한 조민석의 내부설계 장점은 채택되었는지 의문이다. 기존의 고가도로라는 인프라스트럭처 위에 동그란 유닛을 배치한 당선안은 파빌리온이나 오브제를 올려놓은 형국이라면, 조민석의 고가도로를 재해석하여 덧대고 빼며 새롭게 인프라텍처로 만든 안은 개념적으로 참신할 뿐 아니라 타협한 현실을 넘어서는 안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신속배달이 급하게 요구되지만, 길거리 속도의 긴장감은 모두가 즐기는 일이 아니다. 무슨 생각에서 기인한 것일까? 오만하게 자기의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은 인간성이 결여되었다고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도로는 공적인 것이지만, 자가용 차 안에서 사적으로 스피드를 즐기다 보면 공적인 공간의 적정한 스피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정되지만 양해를 구하지 않은 속도는 변명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제도에 대한 무관심, 즉 초중고 등 학교 주변은 감속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대학교 주변은 속도감속의 규제가 없다. 자기 속도를 낼 수 있음에도 배려하는 마음에서 속도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 미안하고 공감이 생기듯이, 속도만을 위하지 않고 도시의 잘라진 길들과 건물들, 그리고 인프라스트럭처를 연결하는 인프라텍처에서는 공공을 배려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그것에 고마워하게 된다. 최선의 에티켓은 미리 알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발전의 굴레에서 한 발 떨어져 우리가 가진 인프라스트럭처를 얼마나 인간적인 인프라텍처로 변모시킬 수 있는지 참을성 있게 지켜보는 것도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20세기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인프라스트럭처는 21세기에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변모하며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기존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도시를 단절한 인프라는 인프라텍처로 거듭나며 한때 도시의 비정함과 연민, 그리고 지금의 배려까지 느끼게 한다.

송하엽 |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아트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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