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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북촌 지형의 회복

송하엽 | 아트뮤 편집위원
2017-01-19 | VIEW 2062


경복궁에서 동쪽으로 창덕궁까지. 그 사이에 북촌이 있다. 북촌에는 근대화 이후 학교가 많이 지어졌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된 건물도 1933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외래진료소로 쓰인 엄밀히 말하자면 의대 건물이었다. 그 후 기무사로 쓰이며 정치적 오욕이 새겨졌지만, 시멘트를 벗기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스타일의 빨간 벽돌 벽과 콘크리트 띠장으로 된 수평성을 되살리는 복원과정을 거쳤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프트샵과 학예사 사무실 등으로 쓰이고 있다. 복원 후 건물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원형으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엄 트라이앵글


옛날 경기고등학교도 외관을 바꾸는 리모델링 없이 내부만 바꿔서 정독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기숙사 건물이었던 빨간 벽돌의 화동랑도 서울교육문화관으로 바뀌어 전시관으로 쓰인다. 최근에는 화동길(花洞郞), 의 높이 4m의 옹벽을 털어 북촌관광안내소와 공중화장실로 활용된다. 운치 있는 돌계단 덕분에 조그만 공원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 그 동네에 다소 권위적이었던 학교가 다정한 공공공간이 된 좋은 예이다.
현재 북촌과 그 주변 지역은 거주인구가 줄고, 학령인구도 줄면서 기존 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있다. 정독도서관에서 감고당길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풍문여고도 마찬가지. 이전하면서 서울시가 그 땅을 매입하여 서울공예박물관으로 바꾸는 일을 추진 중이다.

변화를 준비하는 곳은 또 있다.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는 조선 시대 서울의 중심이었다. 현재 경복궁 옆(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자리)인 이곳은 종친부를 기준으로 남쪽이자 양반 계층의 주거지였다. 소나무가 많아 송현(松峴)이라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식산은행원 숙소 부지로 쓰이다 해방 후 국방부가 미군에 빌려줘 미 대사관 직원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한진그룹의 소유로 호텔건립추진 실패 후 한류복합문화 공간으로 복원을 앞두고 있다. 이곳에 문화공간이 들어온다면 국립현대미술관과 앞으로 들어올 서울공예박물관과 더불어 뮤지엄 트라이앵글(Museum Triangle)이 된다.



동서로 연결되는 공공공간


본관과 과학관의 리모델링, 실외 아트플랫폼


풍문여고 터는 안동별궁이 위치한 곳으로 궁의 동쪽의 종친부와 더불어 왕가의 안가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2006년에는 돌담을 복원하여 감고당길의 학교 담을 돌담길로 만들었다. 이 공간을 21세기 공공예술공간으로 삼아 도시의 단절된 시간과 골목길을 엮는 다소곳한 마당으로 탈바꿈하려 한다. 주변의 공공문화시설과 시민들의 다양한 공간은 연속되는 선과 면, 그리고 건축적 볼륨으로 이어질 것이다. 근대화에 의해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공공의 장소로 다시 엮어주는 거다. 인사동길로부터 시작하는 보행길의 흐름은 남북으로 연속되며, 높은 담을 낮추고 새로 제안하는 남쪽의 아트플랫폼은 도시의 불확정적인 공공공간을 마련해준다. 북쪽의 연지, 후정의 공간은 돌담을 돌아서 들어갈 수 있는 은밀한 오래된 정원이 될 예정이다. 의도된 질서보다 땅에 축적된 역사의 시간을 엮는 것으로부터 얻어진 질서가 도시의 시간 연결체가 되는 것이다.

은행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오래된 은행나무는 터에서 제일 높은 메에 궁 뒤에 있었다. 터의 북쪽 높은 메 아래에는 연지가 있어서 운치를 더했다. 은행나무 동산은 서서히 감고당길로 경사를 지어 내려오던 곳에 계단과 자연이 어우러진 화계를 만들어 뒷동산은 예전 모습으로 회복된다.
뒷동산에서 동관 밑의 필로티를 통해 북촌을 내려다본다. 현재 운동장은 윤보선길의 레벨에서 학교 레벨에 맞추어 아트플랫폼을 만들어 박석을 깔고, 광장으로 사용한다. 마치 종묘 정전의 월대처럼 낮에는 사람들도 북적이고, 밤에는 별을 보는 곳이다. 광장은 길이자 마당으로 향후 대한항공 부지가 개발되어도 공공보행공간을 연장하는 너른 공간이다. 주말에는 프리마켓으로 북적이고, 일 년에 한 번 가례 행사에는 주차장과 다 함께 가례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대지는 구석구석 남아있는 숨은 보석 같은 골목길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며 도시의 비움은 채움이 되고, 동서로 연결되는 공공공간을 만들게 된다.



정보관의 얼레와 같은 파사드, 연지, 오래된 정원의 회복


대지에서 찾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은 도시의 고고학적 깊이를 더한다. 감고당길에서 내려오다 만나는 사고석담의 모서리는 담장의 기단석으로 쓰이는 석재 3개를 바닥에 묻혀 보이는 않는 장대석 위에 수직으로 쌓아 해학적으로 보강했다. 이런 모습은 보존하여 유지하며, 더 내려가다 보면 사고석담이 콘크리트 벽으로 흉하게 끊어진 부분 아래에 남은 문지방이 있다. 아마 별궁의 후정을 드나드는 뒷문이었을 것이다. 콘크리트벽을 걷어내고, 그곳을 후정을 바라보는 창으로 변용하여 옛것에 대한 오마주를 더한다. 높은 곳에서 물이 흘러 모이던 연지는 원래 위치에 복원되어 판판했던 학교의 땅에 촉촉한 기운을 만들어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위계를 설정할 것이다. 둔덕, 돌담, 은행나무, 연지 등의 땅이 가지고 있는 요소는 고고학적으로 재발견 되어 도시를 재생하는 원리가 된다.



감고당길에서의 열린 진입, 은행나무로 올라가는 화계


아날로그적 감성과 하이테크 건축기법 접목


풍문여고 건물의 원형은 최대한 보존하되 필요한 기능을 위해 새로운 코어를 삽입하는 형식이 더해진다. 건물의 외벽과 실내의 계단, 목조 트러스, 교실 벽 등은 학교 건물의 기억을 남기고, 오래된 것을 존중하며 기존대로 쓰며, 비움을 통해 땅과 더불어 새롭게 발견되는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창은 회랑이 되고, 필로티도 되고, 큰 동선적 프레임도 된다. 학교건물은 대지에서의 연결과 실내의 필요에 의해 매스를 비우는 형국으로 은행나무로 가기 위해서 1,2층을 덜어내기도 한다. 동그란 정보관은 다양한 두께의 루버로 마감되어 마치 얼레와 같이 서로 실을 엮어나가는 세미나, 체험공방, 도서관 등의 공유공간으로 변모한다.



3층 전시실, 작가와의 미팅플랫폼


창조적 보존이 이러하다면, 현대적이고 창발적인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이 집이 담아야 할 21세기의 공예는 서로 모여 사는 인간사의 전통을 지키고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 이는 유형 문화의 가치를 추구하며, 같이 생각하고 만드는 것을 통해 정신적 창의성을 고양하여 공동체의 삶의 지평을 우리 땅의 사물들과 함께 확장하는 것이다. 예술적 행위를 같이하는 씽크탱크 플랫폼은 크래프트 헛(Craft Hut)이라는 파빌리온과 같이 가변적이고 불확정적인 공간에서 마련된다. 크래프트 헛은 작고 소박한 창작소라는 뜻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손으로 만든다. 즉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여 창의성이 발현하는 장소다. 태곳적에 인간들이 축제를 위해 사물을 빚고, 두드리고, 꼬며 축제와 일상을 위한 장치를 모아서 만들었듯이, 크래프트 헛에서 작가와 시민은 교감하며 공예문화를 빚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서울공예박물관과 공예팩토리마을의 중간 위치. 작가들 이 공간에서 감명받고 모티브를 얻길 바란다. 또 사람들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도 얻을 수 있다. 낮에는 전시장으로 저녁에는 로비와 과학관에 자리한 카페는 늦게까지 오픈해 작가와 시민이 만나고 공감하고 토론하는 곳이 된다. 거기에 공예품 생산에서 판매까지 네트워크를 브레인스토밍하는 장소로 이용될 것이다. 아날로그적 장인과 디지털의 젊은 작가들이 연계해 작품제작의 오래된 비법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을 융합하는 생산기지가 될 것이다. 헛 자체도 아날로그적 감성과 하이테크 건축기법이 접목되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게 된다.

지금 이 땅은 조선시대, 조선시대말기, 20세기의 근대화 등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변화를 감내해왔다. 위정자의 머리와 손에 이끌려 터가 정해지고, 별궁이 되었다가, 양반집이 되고 학교로 바뀌어 나름 공공의 길을 걸어왔다. 역사 도시, 경관 디자인의 흐름을 타고 돌담이 만들어지고 운치를 더했지만 진정한 공공화는 아니었다. 도시화에 의해 궁과 종묘를 잇는 길 사이에서 개발에 의한 사유화가 진행되어 예전의 정신적인 기운은 약해졌으나, 21세기에는 도시 보행의 바람에 의해 그 단절을 새로운 길로 잇는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보행을 위하여 과감히 담을 허물고 바닥을 만들며 지형을 살려주는 작업은 거대한 청사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문화와 정신이 싹트기를 기대하는 소박한 배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적 비용이 지금보다 더 커지기 전에 하루빨리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송하엽 |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아트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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