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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 묻다] 어느 큐레이터의 자기반성

신보슬 | 토탈미술관 책임큐레이터
2016-05-12 | VIEW 5338

동경현대미술관(MOT)의 <Loose Lips Save Ships> 전시가 던진 질문


“동경현대미술관(MOT)에서 하는 전시 봤어요?”
“언제 한국으로 가세요? 시간 되시면 꼭 보고 가세요.”
“이 전시가 개괄적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면, MOT 전시는 좀 더 특정 주제에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시간 내서 보고 가세요.”



예술적 활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동경 3331 아트 츠요다(3331 Art Chiyoda)의 문타다스의 <아시안 프로토콜>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MOT의 전시에 대해 말했다. 1박 2일의 일정이었기에 빠듯했지만 댄 퍼잡스키도(Dan Perjovschi) 전시에 참여하고, 무엇보다 히로하루 모리(Hiroharu Mori)가 기획했다고 해서 시간을 내보기로 했다.



  • Dan Perjovschi(신보슬)
  • Dan Perjovschi(신보슬)
  • Dan Perjovschi(신보슬)


일요일 아침 11시, MOT. 이미 티켓 창구 앞에는 사람들이 똬리를 튼 뱀처럼 겹겹으로 줄을 서 있었고, 언뜻 봐도 30~4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메인 전시장에서 PIXAR 전시를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티켓 창구가 하나여서 PIXAR 전시를 보지 않아도 일단 줄은 서야 했다. 빡빡한 일정에 봐야 할 전시도 많은데 줄을 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고민했지만, 기왕에 왔으니 일단 전시를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막상 티켓을 끊고 나니 입장만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 PIXAR 전시와는 달리 <Loose Lips Save Ships>는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서울시립미술관 드림웍스 전시에 몰리는 관객을 생각해볼 때) 한국이나 일본이나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블록버스터가 해답인 것 같아 마음이 꽤 씁쓸했다.

<Loose Lips Save Ships>는 1999년 MOT에서 주목할 만한 일본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시작한 MOT Annual의 14번째 전시다. 이번 'MOT Annual 2016'은 몇 가지 지점에서 이전 전시와 차별화된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MOT의 큐레이터가 전담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가 그룹인 아티스트 길드(ARTISTS’ GUILD)가 MOT와 함께 큐레이팅에 참여했고, 일본 작가뿐 아니라 국제적인 작가도 함께 초청했다. 또한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기보다는 현대사회에서 혹은 오늘날 예술계에서 짚어봐야 할 ‘주제 혹은 고민’에 더 방점을 찍고 있었다.

전시 제목인 <Loose lips save ships>이 어떤 뜻인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정확한 해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사한 문장으로 ‘Loose lips sink ships’에 대한 소개는 꽤 많았다. ‘Loose lips sink ship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부주의한 말실수가 적에게 노출되어 큰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정부가 벌였던 일종의 캠페인성 문구였다고 한다. 굳이 직역하면 ‘입술을 가볍게 놀리면 배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 정도가 되려나. 아무튼 MOT와 아티스트 길드는 ‘sink’를 ‘save’로 (재치 있게) 바꿈으로써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사회문제나 상황을 좀 더 좋은 쪽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내용을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특히 일본은 서양문화와 달리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처럼 사회적인 문제가 많은 시기에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검열이 중요한 주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Loose lips save ships>, “솔직하게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 배를 구할 수도 있다!” 이 문장을 ‘예술적 표현과 활동이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있지 않을까)’라고 이해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전시의 기본에 대한 문제 제기


실제로 MOT와 아티스트 길드는 이 전시를 통해 예술적 표현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다수 권력자를 위한 가치에 의해 억압과 편견이 난무하는 폐쇄적인 시대이기도 하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사회적 가치에 도전하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예술작품들이 전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거나, 전시 자체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물론 예술과 검열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러한 내용을 주제로 하는 전시나 프로젝트도 많다. 그럼에도 <Loose Lips Save Ships>에 주목하는 것은 이 전시가 전시를 만드는 기본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약 1년 반이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쳐 기획되었다. 우선 이 전시를 위해 MOT와 아티스트 길드는 작년 2월 이틀에 걸친 토크 프로그램인 <아티스트 길드: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Artists’ Guild: The Artists as Worker)>를 기획하고 예술가, 학자, 교사 등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군을 게스트로 초청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예술적 표현활동을 둘러싼 오늘날의 사회적인 상황들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전시는 이 토크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Hajime Saito_Clear
Hajime Saito_Clear


전시장에 들어서면, 교복을 입은 여학생(실제로는 작가 자신이다)이 공공장소인 듯 보이는 곳에서 술병째 들고 마시는 장면을 클로즈업한 하지메 사이토(Hajime Saito)의 대형사진작업, <CLEAR>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이 사진과 표현의 자유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여학생이 술병째 들고 마시는 것이 분명 바람직한 장면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를 공공공간에 버젓이 전시하는 것이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작가는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이미지를 보는 관객 중 누군가는 뭔지 모를 불편함이나 불쾌감, 혹은 이런 사진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전시장에 버젓이 걸어 놓은 큐레이터나 미술관 관계자에게 불만을 가졌을 법하다. 이처럼 사이토의 작업이 감정적인 불편함, 이미지가 놓여있는 공간에 대한 의외성에 기반한다면, 퍼잡스키의 드로잉들은 좀 더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다. 어떻게 예술 표현의 자유가 침해 당하는지, 어떻게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상황을 줌아웃해가며, 시니컬하고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전시는 줌인, 줌아웃을 번갈아 가며 관객에게 예술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특정 사례 제시가 아니라 다양한 기관들과 구조, 사회계층들 사이에서 어떻게 검열이라는 기제가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근대사와 오늘날 현대사회 및 현대인의 의식을 형성하는 제도적 장치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히카루 후지(Hikaru Fuji)의 <폭격에 대한 기록(Record of the Bombing)>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고민


Hikaru Fujii_Record Of Boming(신보슬)
Hikaru Fujii_Record Of Boming(신보슬)


영상과 텅 빈 하얀 액자, 텅 빈 하얀 전시 케이스, 텅 빈 하얀 좌대, 그리고 꼼꼼하게 적어놓은 레이블로 구성된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당황스럽다. 그러나 영상과 레이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사진이 혹은 자료가 너무 폭력적이고 잔혹해서 (차마) 전시하지 못했다. 대신 사진과 자료를 담을 텅 빈 프레임만을 전시한 것이다. 정작 이미지는 전시되지 않았지만, 레이블의 설명을 읽으며 전쟁 이미지가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이처럼 작업은 비어있음, 부재를 통해서 우리가 전쟁이라는 하나의 역사적인 상황을 다시 점검하게 할 뿐 아니라, 전쟁으로 야기되는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 나아가 기억과 망각의 방식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후유히코 타카타(Fuyuhiko Takata)는 1888년부터 1944년까지 <금서목록 (Lists of Prohibited Books)>, 정부가 사회 안정에 방해되거나 공공 윤리를 부패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출판을 금지했던 정부간행물의 목록들을 3권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목록은 <공공의 평화>와 <도덕성>이라는 두 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전시된 책들은 1976년과 1977년에 재발간된 버전을 보여주면서 더욱 직접적인 사례들을 드러낸다.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인 아투르 쥬미엡스키(Artur Zmijewaski)의 <반복 (Repetition)>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를 표현한다. <반복>은 1971년 스탠포드 대학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pardo)가 진행했던 스탠포드 감옥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라는 심리학 실험을 재현한 영상작업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수감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신문이나 광고를 통해 모집된 실험군을 교도관과 죄수 두 부류로 나누어 2주 동안 실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험을 지속하며 교도관 역할에 참여한 집단의 행위가 극단적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해서 결국 6일 만에 경찰이 개입하여 실험을 중단하게 되었다. 쥬미엡스키의 작품은 이러한 내용을 폴란드 상황에서 재연함으로써 원래 실험이 의도했던 통제와 저항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통해 인간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유발되는 내적 갈등에 대한 것을 비디오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SatoshiHashimoto_198~(신보슬)
Satoshi Hashimoto_198~(신보슬)


이어지는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갑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당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갑을 여기에 있는 열쇠로 열 수 있습니다. 만일 열쇠를 찾지 못한다면 전시장 안내원에게 요청하십시오’라고 쓰여있다. 사토시 하시모토(Satoshi Hasimoto)의 <198개의 198 추상적 직접 행동 (Methods of Abstract Direct Action Tentative)>작업이다. 작가는 정치학자인 진 샤프의 <198개의 비폭력적 행동 198 Methods of Nonviolent Actions>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는데, 전시장 곳곳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이 했던 행동은 물론 다른 작가들이 했던 행동에 대한 지시문을 비롯하여, ‘눈을 보시오’라던가 ‘음악을 틀어요’와 같은 일상적인 행동들까지도 매뉴얼화 시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특정 매뉴얼과 그에 따른 실행 때문에 사회적 관습과 규준이 어떻게 사람들의 행위를 조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권력을 내화시키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토루 요코타(Toru Yokota)의 <전쟁 끝나지 않은 버전, WAR unfinished version>은 다양한 검열 기재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20년간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일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소말리아 등지의 전쟁지역을 촬영해온 요코타는 다른 전쟁 다큐와 달리 어떤 하나의 입장에 편중되지 않고 양측의 입장을 가급적 공정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그의 영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탈레반과 미군의 입장 중 어느 한 쪽을 정당화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된 풋티지 모음 영상에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장면보다는 오히려 전쟁을 즐기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기존 작품들에서 잘 보여주지 않았던 장면을 포함했다. 때문에, 큐레이팅의 과정에서 작품을 보여주기 전 교사들과 협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영상은 중학생 이하 관람용과 고등학생 이상 관람용으로 편집되었으며, 각각 다른 입구를 통해 전시장으로 입장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두 개의 입구는 하나의 공간에 두 개의 영상, 그리고 교사들의 사전 리뷰 과정을 효과적으로 가시화시켰다. 두 영상 장면을 하나하나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편집이 달라졌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선정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누가 개입했으며, 최종적으로 어떻게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프로세스가 메타적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전시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처럼 전시는 단순히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거나 혹은 어떻게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금 다른 방식과 접근을 통해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어떤 방식으로 침해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기관과 제도, 장치들이 개입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에게 내재화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전시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답은 관객의 몫이다. 그렇기에 전시를 모두 둘러본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다. 장담컨대, 전시를 보고 난 후 (예술적) 표현의 자유, 혹은 검열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황에 대해서 솔직하게 언급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지켜간다. 왜냐하면 때론 그런 솔직함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르니까. “Loose Lips Save Ships!”

대중적, 상업적, 블록버스터 전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PIXAR 전시와 함께 개최된 이번 전시는 전시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왔는지 계량적 수치로 전시를 평가하는 것이 점점 더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큐레이터를 하겠다고 처음 다짐했던 중3 무렵,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꿈이었던 네오가 파트라슈와 함께 루벤스의 그림을 보다가 얼어 죽는 장면은 꽤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작품은 그런 힘이 있다고 믿었고, 그런 힘을 보여주는 것이 큐레이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저 일이기에 전시를 만들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되었다. ‘검열’이라는 이슈가 한동안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난해를 돌아보면서, 문득 왜 나는 이런 전시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전시가 가지고 있는 힘을,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왜 잊고 있었을까. 인기 있는 전시가 전시의 전부가 아님을, 어쩌면 전시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잊고 지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물어봐야 할 때인 듯하다. 지금, 우리에게 전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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