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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미학을 품은 사진, 현대미술로 지평을 넓히다

2016-05-13 | VIEW 2387

지난 5월 3일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전이 서울관에서 오픈했다. 전시를 앞두고 미술의 언어로 차용된 사진에 대한 대담을 진행했다. 전시 기획자인 이지윤(서울관 운영부장), 참여 작가인 이승택, 천경우(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그리고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ART:MU 편집위원)이 함께했다. 30년간의 한국 현대미술사와 사진 매체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실험을 기록하는 장치에서 작품으로


이지윤: 이번 전시 기획의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본 전시는 사진작품을 사진가가 만든 작품으로 보아야 할지, 사진을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매체 중 하나인 현대미술작품으로 보아야 하는 입장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은 저널리즘 혹은 공적인 기록물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지만, 글로벌화가 시작되면서 더욱 시야를 넓혀 현대미술사의 흐름에서 사진이 어떻게 다른 매체를 차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전시는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고요. 특히 대지예술, 해프닝을 기록으로 남긴 이승택 선생님의 작품이 chapter 2, 개념적 미술과 개념 사진 맥락에 소개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승택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대지예술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기도 전에 어떻게 해프닝 퍼포먼스를 실행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시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또 천경우 작가님은 참여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고요.

천경우: 발명된 지 200년이 안 된 사진은 여전히 새로운 매체라고 생각해요. 세분된 인식, 이론, 미학적인 고찰이 충분히 있기 전에 기술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지금도 변화 중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빠른 속도로 진보해 온 데 반해 거대산업 발전의 필요성이 빈약한 ‘사진예술’의 이론과 미학은 매우 느린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사진이 현대미술의 한 현상으로 수용되고 미술관에 전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80년대 말 유학에서 돌아온 작가들이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난 작품을 선보였는데 외국 예술사조에 어두웠던 한국에 일정 부분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새 형식을 모방한 경우는 드물었지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사진의 개념과 작가의 사고방식, 태도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하엽: 90년대 이후 사진이 예술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시대와 비교해보면 예술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예술로서의 입장은 약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히려 설치미술이나 건축은 대중화되었지만 사진은 패션 쪽인 상업예술과 순수예술, 두 개로 나뉘어 자석의 양극과 음극처럼 발전한 것 같아요. 아직 수렴하는 부분이 정립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사진의 예술적인 흐름에 대한 해석을 담았다고 보입니다.

이승택: 저는 실험작가였고 초기에 작가활동을 하다 보니까 자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야외에서 불, 연기 같은 비물질로 작업을 하다 보면 기록이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료를 남긴다는 의미에서 사진을 처음으로 찍게 되었습니다. 사진도 하다 보니까 자료를 남기는 것에서 발전해 화집 혹은 카탈로그를 꾸미는 형태가 되었고요.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으로 남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당시 작업방식은 다양했지만 책을 만드는 방법은 비슷했어요. 저는 그게 싫었고요. 화집으로 대중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작품 사진도 비슷한 것은 안 되겠구나 싶어 독창적이고 다양한 것을 담고자 했습니다.
사진기를 처음 산 게 대학교 2학년, 1957년도였어요. 당시 카메라는 정말 귀했습니다. 사람들이 날 보지 않고 카메라만 봤지요. 50년대 말에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것에 집착했어요. 연필공장에 널빤지가 쌓여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에만 있어요. 외국에선 볼 수 없는 풍물, 장면이죠. 우리 것이 있는 곳을 따라다니며 찍었습니다. 배, 바다 축제도 그중 하나고요. 깃발, 버섯재배, 김 양식장, 공사장, 등 다양한 대상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진 이론이나 기술은 잘 모릅니다. 작품을 찍으면서도 잘 몰랐는데 오늘 이지윤 부장님 이야기를 듣고 사진 매체가 이렇게 현대미술의 일부로 크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지윤: 천경우 작가가 추가로 말씀해 주세요. 대지미술로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현대미술의 언어로 기능하게 된 몇 가지 특징이 있죠. 외국은 이미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실험이 많이 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많이 다루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성완경 작가님의 퍼포먼스도 포함했는데요. 천경우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경우: 오늘 이승택 선생님을 처음 뵈었는데요. 저는 그동안 선생님의 작품과 작업하는 모습이 기록된 사진을 통해 작품을 상상했으며 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실제 느낌 없이 기록된 사진을 작품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랜드아트나 퍼포먼스와 같이 기록 없이는 전달이 어려운 작품을 전달하는 기록매체로 볼 것인지 작가 스스로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큰 스케일의 랜드아트를 기록한 사진에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이유는 사진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된 내용이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진에는 ‘대상성’이라는 불변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성과 사진의 이미지를 혼동하게 되죠. 아까 이승택 작가님이 50년대에 사람들이 카메라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고 하셨는데요. 카메라가 인간과 대상 사이에 있는 커다랗고 신비한 마치 독립적 존재 같은 기계였는데 지금은 손바닥만 한 기기로 변하고 있거든요. 사진은 어디까지나 표현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도구이며 기술적 표현성이 돋보이지만 결국에는 정신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지윤: 이승택 선생님이 해온 실험적인 퍼포먼스, 물, 땅, 불, 연기 등 비물질적인 것으로 작업하는 작가가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활용한 것도 놀랍습니다. 지평을 넓힌 게 중요해요. 천경우 작가님의 작품도 그 맥락에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이 단순한 기록으로만 남지 않고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 이유는, 천경우 작가님을 예로 들자면 우리가 기록할 수 없는 것을 기록하기 때문이지요.
이번에 전시되는 이라는 작품은 뿌연 초상화 같은 이미지지만 작가가 찍는 것은 그 사람 자체는 아니거든요. 진실이 아닌 것이 담길 수도 있고요.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 시간 동안 바라보며 대상과 나와의 관계가 찍힐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추상적 가치도 잡아낼 수 있는 거고요. 즉 사진이 찰칵하고 잡아내는 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추상적 개념을 포착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관계를 잡아내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새로운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아주 사적인 표현이 저널이나 보도에서는 아주 공적인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의 본질을 고찰하는 새로운 자세


송하엽: 건축 사진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전에는 원하는 촬영 각도를 못 찾다가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한강에서 카약을 타며 낮은 곳에서 한강과 서울의 모습을 찍기도 하고, 건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표현하기 위해 스카이차를 빌려서 위에서 찍기도 합니다. 사진작가가 대상과의 위치나 관계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포착하지 못하는 각도를 추구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지윤 부장님 이야기처럼 사진을 통해 현실을 재발견하는 것만큼 사진작가가 장면을 연출하여 찍는 것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 거리 연출, 인물 연출, 또는 몽타주 사진 같은 것들이요. 현실을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영역의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특히 현실과 시뮬라르크의 관계가 사진예술 발전동인인 것 같습니다. 천경우 선생님의 사진도 한 인물의 시뮬라르크 아닐까요? 존재의 숨결을 찾고자 하는?

천경우: 우리는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그 매체를 잘 안다고 오해하는데 바로 그 점이 사진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탐구 중이지요. 글은 저널리즘, 광고카피, 시 등 이미 세분되어 이해되고 있지만 사진은 아직 미흡하고 각자 다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사진을 말하지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사진은 사대주의적 성향이 강한 매체인 것 같아요. 회화나 문학은 이미 우리 자생적인 전통이 있었으나 19세기 유럽에서 발명된 사진술(technology) 때문에 사진(medium)은 철저하게 서양의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의 사진예술이 우월하다는 고정 관념도 있고요. 60년대 소수의 선배작가가 추구한 조형예술의 비물질성은 매우 상대적입니다. 저는 사실적으로 보이는 사진을 주로 다루지만 형상이 필요하지 않은 사진에 대해 생각을 자주합니다. 패러독스한 이야기죠. 라틴어 계열 문화권에서 'photography(한글 맞춤법에 ‘포토그라피’라는 단어는 없음)'라는 용어는 ‘빛으로 그린다’는 뜻의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진실을 베낀다’는 뜻의 ‘사진(寫眞)’이라는 용어를 도입기부터 쓰고 있습니다. 매체를 대하는 기본적인 정서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 관점으로 사진의 본질을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윤: 사진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거에요. 그런 맥락에서 사진은 서구에서 들여온 매체였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은 이승택 선생님의 70년대, 90년대 작업에 녹아있는 샤머니즘적인 퍼포먼스와 접목했다고 봐요. 로버트 스미손의 스피랄제티(Spiral Jetty)작품 등 미국의 대지미술 작가들이 자연 변형에 착안하여 만들었던 작품은 미술의 조형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에요. 이승택 작가님이 초자연적인 접근으로 대지미술을 한 것은 또 굉장히 다르지요. 천경우 작가님은 사진으로써 보이지 않는 관계를 그려내고요. 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을 포착하는 수단이 되는 거죠. 천경우 작가의 프로젝트 Thousands (2006~2008) 예로 들면, 천千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 이를테면 작은 부족을 찾아가 작업했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그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와 역사의 만남이기도 하죠. 아시아 작가만이 가진 관점입니다. 우리나라 작가의 정신이 현대 사진에 담긴 모습이 아닐까요?

이승택: 저는 사진의 이론적 부분은 잘 모르는데 사진을 넘어 현대미술이라고 말하는 시대의 구조적인 의식이랄까요. 그런 것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어요. 사물을 봐도 광범위하게 해석하지 않았죠. 사유와 지식이 부족했어요. 얼마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육명심의 사진전을 보았는데 가장 민족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작업 했더군요. 그때는 다 그렇게 했어요. 지금은 사진이 유물이 되고 기록을 넘어 현대미술이 된 거죠.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작업이 대지예술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좋아서 찍은 것 뿐입니다. 그런데 폭넓게 해석해 주시니까 그런가 보다 합니다.

이지윤: 이승택 작가님이 79년, 80년대에 체계적으로 작업물을 어마어마하게 실사 출력해놓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잘 보관하셨고요.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건데요. 선생님이 그 당시에 5m짜리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다들 놀랐습니다.

이승택: 작품이 크면 클수록 극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일부러 크게 제작했습니다. 그래야만 의도한 대로 되었거든요. 그리고 사진 안에는 대부분 내 모습이 들어가 있어요. 그 안에 서 있으면 대상의 스케일을 알 수 있고 그게 나중에는 또 다른 풍부한 이야깃거리이자 사인 혹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요. 미학이 발달한 지금 다양하고 풍부한 관점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지윤: 다양한 해석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리지널리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1970년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가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1986)》에서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작품 <지옥의 문(Gates of Hell)> 윗부분에 있는 <세 명의 여신(Three Graces)>라는 작품이 있지요. 이것은 같은 여인의 청동주물을 하나 만들고, 세 개를 복제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이 작업에 대해 로댕 조각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어요. 즉, 더는 작가가 모든 것을 그/그녀의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맥락을 제안하는 이론이에요. 이번에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라는 작품을 찍은 것은 주명덕 선생님이었지만, 김수자 작가의 작품으로 나가요. 콘셉트를 만드는 것은 작가라는 이야기죠.

천경우: 반드시 작가가 사진을 직접 찍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90년대 초에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더이상 논쟁거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복잡한 장비와 기술이 부각되고 장인적인 기술이 중요시 되었지만 결국에는 작가의 콘셉트와 설득력 등 전반적인 능력이 중요하죠. 이 능력에는 좋은 사진가를 통해 자기 작품을 기록하고 이미지를 결정하는 부분도 포함될 것입니다.
이제 사진을 하나의 새로운 보편적 ‘언어(말)’로 받아들이면 표현방식을 이해하는 일이 좀 더 쉽지 않을까요. 언어는 정서에 따라 구사하는 방식이 다양하고, 언어를 통해 예술적 행위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겠죠. 또한 사진 영역은 예술 외에 과학, 기록, 언어 등을 포괄하여 넓고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의 울타리에 있던 사람들이 기술적 표현방법이 아닌 작가의 사고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태도에 대한 고찰이랄까요. 다른 매체를 다루다가 사진을 사용하게 된 작가나 이론가들은 사진을 편의적인 표현수단이 아닌 ‘언어(말)’로 보고 그 본질을 탐구하고 경험했으면 합니다. ‘말’은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대상이니까요.

송하엽: 건축가 백진은 《풍경류행》 이라는 책에서 그리스 델포이 신전지역의 풍광이 빛의 대조가 심해서 포르노 그래픽 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는 습기가 없기 때문에 빛의 대조가 샤프하다고 할까요. 한편 한국의 풍경은 습기가 많아서 멀리 있는 산이 겹쳐 보이기 때문에 에로틱하다고 표현합니다. 지구의 다른 풍광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빛과 자연, 도시의 현실적인 모습이지요. 이승택 선생님께서 세월과 그늘, 습기가 바위에 빚어낸 녹색이끼를 작가 입장에서 재현하는 퍼포먼스처럼 주변 환경에 대한 탐구가 대상을 환기하고 대상과의 관계를 재설정합니다. 저도 오늘은 운전하면서 주변을 관찰하다가 미세먼지를 찍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음예 예찬(Praise of Shadow)라는 건축적 전통이 있고, 사진 또한 빛의 대조가 명확하여 무겁습니다. 우리의 건축 사진도 그런 경향이 있지요.
제 건축 작품은 빛이 모든 곳에 퍼진 따뜻한 느낌으로 찍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모든 공간과 사물이 튀지 않고 따뜻한 이미지로 나오려면 전면적으로 콘트라스트가 심하지 않고 빛을 피사체에 모두 주는 테크닉이 필요하겠죠. 아니면 그런 순간을 포착하든지 혹은 연출하여 증폭하던지요. 한국적인 빛, 애매한 사물의 경계 등을 계속해서 새로운 위상으로 포착해 간다면, 사진예술을 통해 우리의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애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윤: 분명히 사진이라는 독립적인 장르는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 전시는 사진이 시각 언어로서 현대미술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시립미술관도 사진전을 하고 있는데 같이 보시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왼쪽부터 천경우, 이승택, 이지윤, 송하엽
왼쪽부터 천경우, 이승택, 이지윤, 송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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