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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추측의 세계

이우성 | 시인
2016-08-22 | VIEW 80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30주년을 맞아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를 연다. 제목이 인상적이다. 달의 ‘순환’은 만물을 끌어안을 만큼 거대한 상징이다.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생 안에 담기지 못할 것은 없다. 또한 이 제목은 백남준이 1965년에 발표한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은 13개의 TV 브라운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TV는 달을 담고 있다. 그 안에서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떫은 밧줄'과 '도원경'


과천 30년 특별전 제목을 백남준의 작품을 연상하게 지은 이유는 명백하다. 과천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백남준의 ‘다다익선’이기 때문이다. ‘다다익선’은 TV로 쌓은 거대한 탑이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위해 제작됐다. 30년 전, 개관 기념행사 때 이 작품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TV로 쌓은 높은 탑은 번영, 성장, 성취, 가능성에 대한 은유였다. 의심할 바 없이 ‘유토피아’에 관한 작품이다.

이승택 작가
이승택 작가


그래서, 특별전의 주인공은 ‘다다익선’이다, 라고 적으면 기획자들이 싫어하려나? 아무튼 나는 그렇게 봤다. 전시는 세 파트로 나뉘는데, 각각의 작은 제목은 해석, 순환, 발견이다. 첫 번째가 해석이고, 역시 내가 보기엔 이 부분이 전시의 핵심이다. 그런데 뭘 해석하지? 바로 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서 TV를 1,000대 넘게 쌓았다는 ‘다다익선’이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해석하는 전시에는 모두 세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승택, 박기원, 이불이다.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감당해낼 수 있는 작가가 누가 있을지 생각해보면 사실… 손에 꼽는다. 몇 안 된다는 얘기다. 이중에서, '다다익선'의 규모를 감안할 때, 가급적 거대한 설치 작품을 만드는 작가를 선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꼽은 손가락 중 몇 개를 펼쳐야 한다. 그러고 나선 기획자의 의도가 남는다. 이 전시를 통해 기획자는 뭘 보여주려고 했을까?

특별전의 주인공은 ‘다다익선’ 말고 하나 더 있다. '다다익선'과 세 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즉 과천관 램프코어(다다익선, 백남준), 1층 통로(도원경, 박기원), 중앙홀(취약할 의향, 이불). 그러니까 이 전시에서 ‘해석’하려고 하는 건 ‘다다익선’만이 아니라, 30년을 작품들과 함께 살아온 과천관이라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가서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공간이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 일단 ‘다다익선’이 들어갈 정도의 원형 공간이,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없다. 이번 특별전은 램프코어에서 1층 통로, 중앙홀로 이어지는데, 이 동선을 갖춘 공간 역시 없다. 특히 중앙홀은 2층과 3층까지 경계 없이 뚫려 있다.

기획자는 이 공간들을 시간의 흐름으로 연결 짓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부분이 재미있다. 왜냐하면 어떤 작가들의 작품은 그것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판단하자면, 다다익선은 80년 대, 즉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동경하던 시기의 유토피아를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 다다익선 주변을 이승택이 로프로 칭칭 동여맸다. ‘떫은 밧줄’이라는 신작이다. 우선 시각적으로 굉장하다. '다다익선' 주변을 로프로 묶어서 마치 그 공간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은 묶이지 않는다. TV는 여전히 미래의 형상을 상영하고 있다. 로프는 현실적이고도 불완전한 굴레다. 다다익선은 미래로 떠나려고 하는 작품이다. 로프는 그걸 막는다.
중앙홀에는 박기원 작가의 작품 '도원경'이 펼쳐진다. 공간에 대한 이 작가의 인식은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를 테면 박기원은 현실의 표피를 살짝 벗겨 낸다. 거기 다른 세계가 있다. 그러나 그곳은 여전히 현실의 그 공간이다. 박기원은 이 묘한 아이러니를 늘 아무렇지 않게 펼쳐 놓는다. 그는 과천관 1층 통로를 ‘도원경’으로 바꾸었다. 바람이 복숭아 빛을 날린다. 이곳은 지금, 신선이 산다는 선경이며, 또 다른 미래로 가는 꽃길이다.

박기원, 도원경
박기원, 도원경


설치작업 중인 박기원 작가
설치작업 중인 박기원 작가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이승택의 ‘떫은 밧줄’을 지나 박기원의 ‘도원경’에 이르면 현실과 과거, 과거와 미래 사이엔 그저 어떤 추측만이 난무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긍정도 있고 부정도 있다.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닌 절대적 아름다움도 있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공간과 공간 사이에서, 사고가 이렇게 풍요로워지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다!)

이불 작가의 '취약할 의향'


도원경을 지나면 천장까지 뚫린 넓고 높은 공간 중앙홀에 이불의 거대한 설치 작품 'Willing to be vulnerable'이 있다.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면 ‘취약할 의향’이라고 한다. 구글 번역기가 시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어의 조합이 매력적이다.

작년 시드니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을 이번 전시 콘셉트에 맞게 일부 가져온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규모가 훨씬 더 큰 작품이고, 이른바 ‘레이어’도 더 다층적인데, 이번엔 그중 일부를 골라 와서 맥락을 재구성했다. 세 개의 유닛이 있다. 일단 허공에 은빛 비행선이 떠 있다. 형태는 유선형이고, 빛을 격렬하게 반사한다. 누가 봐도 미래지향적인 물체다. 하지만 위태위태하다. 바닥엔 길게 천이 놓여 있고, 이 천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덮는다.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길 같다. 천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 문양과 하늘에 떠 있는 비행선(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지 모르겠지만)을 번갈아 쳐다보면, 불길하다. 비행선의 파편이 천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저 비행선의 운명이 눈부실 것 같진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주선은 발광하듯 빛난다. 그리고 거대한 비닐이 거의 천장 높이에서 바닥까지 늘어져 있다. 비닐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곡예사가 외발 자전거를 타고 전진한다. 그런 곡예사가 여럿 있고, 모두 머리는 없다. 머리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 들린다. 분명히… 들린다. 기괴한, 서커스다.
이 작품은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수평으로 놓여 있다. 물론 각각의 공간에서는 저 너머의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배치를 떠올리면 ‘취약할 의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백남준이 꿈꿨던 '다다익선', 즉 풍요로운 미래는 과연 도래할 수 있을까? 한편 풍요로운 미래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까? ‘취약할 의향’이 대답이 될 것도 같지만, 이 역시 추측이다.

이불, Willing to be vulnerable
이불, Willing to be vulnerable


‘다다익선’, ‘떫은 밧줄’, ‘도원경’, ‘취약할 의향’을 관통하는 것은 시간과 세계다. 세계에 대한 전망, 혹은 세계의 발견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그것의 일부라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일까? 좋은 모든 전시가 그렇듯 ‘해석’은 질문을 갖게 할 때 성공한다.

과천관의 30년을 증명하듯 '다다익선'은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서있다. 나는 백남준이 무엇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미술가가 아니라, 그저 이 공간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한 미술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그저 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추측으로만 존재하는 세계. 그 안에 작은 우주인 나와 당신이 있다. 뜬금없지만, 나는 당신이 좋다. 당신과 나의 이 미지(未知)가 좋다.

글_이우성 시인
시인이자, 패션매거진 <아레나 옴므+> 피처 에디터. 2012년에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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