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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퍼포먼스, 몸의 테크닉을 입다

말로 | 재즈보컬리스트
2016-09-19 | VIEW 759

현대미술로서의 ‘퍼포먼스’라는 단어(혹은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자기만의 상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기를 쓰고 타인을 배제한 채 벌이는 기이한 행위’ 정도로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고전 미술의 익숙한 배경을 딛고 근대에 맞닿아 있는 그림, 조각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파격과 독창성에 겨우 한발 다가간 정도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실험적으로 마련한 ‘예기치 않은’ 예술 장르의 교합은 나 같은 일반인이 현대미술을 더욱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알게 된 이후에 정식으로 관람해 본 적 없던 나는 오늘 그 아련한 시간의 간극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두 개의 전시를 연달아 보면서 일상마저 훌쩍 뛰어넘어 갑자기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과 그 부대 시설이 제법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내게, 이곳은 가족과 나들이 삼아 들러보기에도 좀 거창한 장소였다. 아침부터 리허설 참여를 핑계로 혼자 미술관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니 이 공간의 진심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미술관을 목적 없이 거니는 ‘산책’이라는 것 또한 내게는 ‘예기치 않은’ 경험이었다.




옥정호, 미술관 무지개
함선에서 빠져나온 두 개의 무지개_옥정호, 〈미술관 무지개〉, 2016


내 안의 무지개를 만나는 시간


옥정호의 〈미술관 무지개〉는 배를 보이고 드러누운 거대한 함선 조각에서 빠져 나온 두 무용수의 느린 걸음으로 시작했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맑은 시간, 지상의 인간들은 무지개를 띄우려 한다. 12시를 알리는 청명한 종소리는 시작 신호가 되어 울리고, 함선 안에서 솟은 어린 참나무가 묵묵히 내려다보는 풍경 속에서 나는 어느새 톡톡 튀는 두 공연자의 몸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세련되고 절제된,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상징적 건물 안으로 자연의 원색이 슬쩍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마치 무지개를 따라 꿈을 좇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라는 듯이, 그리고 그 꿈이 얼마나 다채로웠는지를 상상해 보라는 듯이. 두 개의 무지개는 구부러지고, 굴러가며 관객들을 부드럽게 이끌고 나아갔다. 멀찍이 물러선 천장 아래 펼쳐진 넓은 복도를 꺾어 돌아 전시장 기둥이 만들어놓은 비좁은 틈에 이르렀을 때 두 춤꾼은 반으로 접은 몸을 벽 사이에 버텨 넣었다. 바다. 그곳에서 바다를 보았다. 관객에게 소외된 그 작은 공간에 갑자기 찾아온 무지개는 넘실대는 수평선의 파도를 어루만지듯 밑으로 뻗은 손을 휘저었다. 나는 잠깐 소금기가 돌아 짭짤해진 입맛을 다셨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그들은 동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멈췄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바라보는 모습이다. 관객들이 한숨 돌려 무용수들의 시선을 나눠 가지면서 앞으로 펼쳐진 공간에 대해 충분히 인식할 시간을 주는 듯했다. 등 뒤에서 무지개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줄 모르고 벽에 걸린 전시물 감상에 푹 빠진 이들도 있었다. 그들마저 그 작품의 일부였다. 동참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 속의 어떤 소중한 의미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마는, 일상의 한 순간을 보는 듯했다.

리허설을 시작하며 옥정호 작가는 자신도 무용수들이 어떻게 표현해줄지 아직 본 적이 없다면서 기대에 찬 모습을 보였다. 나는 갑자기 동질감을 느꼈다. 재즈 연주와 이 작업이 꽤 닮아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출가로서의 작가가 제시한 개념을 구현하는 무용수들은 마치, 주어진 곡을 무대 위에서 구현해내는 재즈 연주자들과도 같았다. 작곡자가 쓴 곡이 실제로 연주될 때, 그 세부적인 음들은 연주자들의 해석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또한 공연장의 관객 반응이나 그때의 여러 상황에 따라 똑같은 곡이라도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도중에 한 무용수의 모자가 반쯤 벗겨져 머리카락이 조금 드러났다. 원색이 가득한 옷을 입었으나 시종일관 무표정해 흑백 같던 그들의 얼굴이 갑자기 생기 있게 다가왔다. 격렬한 연주 도중에 줄이 갑자기 끊어져 버린 기타연주자가 겹쳐졌다. 문득, 이것 역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공연이며, 그 표현자는 상징으로서의 무지개이기 이전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옥정호, 미술관 무지개
검은 사각형 테이블로 위로 떠오른 아름다운 무지개_옥정호, 〈미술관 무지개〉, 2016

지하 1층의 또 다른 안내데스크에 이르렀다. 커다란 검은 사각형의 딱딱한 테이블 위로 두 개의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본 어떤 무지개보다도 인상적이었다. 마침 그곳에는 직원이 없었다. 만약 이 무지개가 자신의 근무 공간 위로 펼쳐졌을 때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무지개는 곧 전시장 밖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비로소 얼굴을 펴고 박수를 보냈다. 환한 웃음이 보였다.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잠깐 어린아이로 돌아갔었다. 지금은 딱딱해진 몸과 정신이 아직 유연했을 그때, 저 무용수들처럼 쉽게 반으로 접히는 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로.

점심을 먹고 내다본 하늘 아래, 함선 주위로 나들이 온 가족을 본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막 뗀 아이는 균형을 잃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는다. 구르고 돌아보며 올려다본다. 무지개 옷을 입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 자체가 무지개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도 무지개 옷을 입혀두고 싶다.



빛이 가득한 세계 인간다운 액션



김숙현&조혜정, 〈Screens+action!〉, 2016
세 개의 스크린과 어떤 동작들_김숙현&조혜정, 〈Screens+action!〉, 2016

김숙현, 조혜정의 〈screen +action!〉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공연되었다. 들어서보니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공연장의 무대와 객석이 반반씩 나뉘어져 있다. 무대를 반쯤 차지한 세 개의 스크린은 원근의 차이를 두고 차례로 놓여 있었다. 스크린을 배경으로 나눠 이야기 공간과 넓은 무대에서 펼쳐질 무용의 역동적인 동작들이 서로 만날 흥미진진한 공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화면들은 각자의 역할을 할당 받은 채, 줌인과 줌아웃, 서로 약간씩 비틀린 각도, 자막 등으로 마치 살아있는 장면을 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이야기의 큰 틀은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1814〉라는 동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악마에게 그림자를 넘기고 행운의 황금 주머니를 갖게 된 남자가 있다.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고, 누가 묻기 전까지는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게 되는 ‘그림자’는 대체로 인간의 영혼, 정체성, 내면의 불안감을 상징한다고 김숙현 감독은 말했다. 여기에 〈노스페라투, 1922〉라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장면들을 삽입하여 하나의 이야기처럼 편집한 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발표된 지 100~200년씩이나 지난 오래된 이야기들도 새로운 관점의 편집과 형식을 만나면, 새로 출간된 고전 해설서처럼 그 의미가 푹 빠져들 만큼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빛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는 흡혈귀와 그림자를 판 남자가 ‘불안함’이라는 공통의 유전자로 중첩된다.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동화적 이야기는, 스크린과 춤의 만남이라는(형식 융합의 상징일 것이다.) 때로 텅 비어있는 스크린을 배경으로 역동하는 무용수를(실제로 헐떡이는 그들의 숨소리마저 느낄 수 있다.) 만나게 된다.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갑자기 무대 위로 튀어나오며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것은 영화에 더욱 몰입하는 장치가 되었다. 주인공에게 제시된 악마의 선물들은 때로는 영상 속에서 더 잘 보이지만, 빛을 피해 숨거나 그림자를 돌려받기 위해 애쓰는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의 극적인 동작에 시선을 빼앗겼다. 설명을 곁들인 춤이 주는 새로운 재미와 ‘관객으로서의 개입’이라는 경험에 마치 4D 영화를 보듯 긴장되었다.



김숙현&조혜정, 〈Screens+action!〉, 2016
빛이 가득한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_김숙현&조혜정, 〈Screens+action!〉, 2016


주인공이 영상 속의 촛불을 등 돌린 채 바라보는 장면에서 ‘촛불마저 그림자가 있는데……’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문학적인 뉘앙스가 돋보였다. 촛불은 광원이니 실제로는 자신을 그늘지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정체성-을 타인으로부터 부여 받기 이전에 스스로 만들어갈 힘이 있다면 그 주인공도 광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쥐떼가 옮기는 흑사병처럼 황금만능사상은 퍼진다. 거미줄에 얽히고, 식충식물의 입에 든 파리처럼 포획된 삶이 별다른 장치도 없이 거칠게 펼쳐지는 동안 우리는 오래된 질문 속에 갇힌다. 창밖을 내다보는 흡혈귀의 눈길이 그림자 없는 사나이의 시선으로 치환되어 질문해 오는 것이다 비록 빛이 가득한 세계에 산다지만, 너는 얼마만큼이나 인간다우냐고.

요즘 자기계발서가 유행이라고 한다. 새롭게 제시되는 현대의 ‘바람직한’ 인간형에 대한 이런저런 귀한 말씀들을 놓칠세라 책상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관심 글로 저장해 두는 이들도 많다. 바쁜 일상 속에서 그 조언들은 대부분 제 힘을 잃고 말지만, 잠깐씩 다시 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활짝 열린 감각들과 깨어 있는 감수성을 갖고 일상생활을 살아보기를 택할 것이다. 열 장, 스무 장의 포스트잇이 눈앞에 있다 해도 ‘예술적인 순간들로 인생을 채워라’라는 한마디라면 다른 조언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인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다 해도, 그들의 작품에 깊이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은 우리가 일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나의 오감을 다 깨워줄 수 있는 이런 역동적인 전시는 그런 면에서 더더욱 반가웠다. 단 한 편만을 관람할지라도, 그 한 편의 퍼포먼스 안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예술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감상자들은 어쩌면 수많은 계발서를 쓰고 만들어내는 사람들보다 한 수 위에서, 삶의 가치를 깨닫는 법을 ‘예기치 않게’ 찾아낼지도 모른다.




김숙현&조혜정, 〈Screens+action!〉, 2016, 퍼포먼스 중에서



글_말로 재즈보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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