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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성의 원리, 불확정성의 세계를 드러내다

2017-05-30 | VIEW 1823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물리학 이론에 착안한 <불확정성의 원리 The Principle of Uncertainty>전이 5월 24일부터 10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불확실한 세계의 이면을 표현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 왈리드 라드(Walid Raad), 호 추 니엔(Ho Tzu Nyen), 권하윤, 재커리 폼왈트(Zachary Formwarlt)의 실험적인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하나를 측정하는 동안 다른 하나가 변화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확실한 것은 없으며 역사적 사건이나 기록물과 같은 공적인 진실들, 그리고 개인의 기억은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시는 이러한 불확실한 세계의 모순과 빈틈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분석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각자의 기억과 오랫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 온 사실을 재구성하여 현실의 실체에 의문을 던지고, 나아가 예술 작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레바논 출신의 미디어 작가 왈리드 라드는 레바논 내전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작가의 상상력을 엮어 만든 허구적 아카이브 프로젝트 ‘아틀라스 그룹(1989-2004)’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캔버스 뒷면에 시리아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사하여 완성한 ‘아홉 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 마르완 카삽-바시(2017)’을 공개하며 예술의 위상을 결정하는 전시 형태를 비판한다.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제2권: G-고스트(2012~)’를 포함해 3개의 영상 작업을 소개할 호 추 니엔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단독으로 싱가포르관을 담당했던 싱가포르 대표 미디어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식민지 시대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철학적 문제를 소재로 다루어, 오늘날에도 잔재해 있는 식민주의 역사관과 동남아시아의 정체성에 대해 재인식하게 한다.

한국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 권하윤은 가상현실(VR) 설치작품 ‘새의 여인(2017)’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리얼리티와 픽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관객들은 직접 가상현실 기기로 작품을 감상하며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 작가 재커리 폼왈트는 19세기 후반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된 샌프란시스코 풍경 사진을 분석하여 완성한 ‘파노라마와 법인의 탄생(2017)’을 소개한다. 폼왈트는 사진의 제작 시기가 세계 최초로 기업의 ‘법인’이 탄생했던 때와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풍경 사진 뒷면에 숨어있는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이면을 드러낸다.

현대 사회의 불확정성을 표현하고 동시대 미술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불확정성의 원리>전에는 영상과 가상현실(VR) 기기 등 미디어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미술관은 출품작들을 개별적인 전시공간에 설치하여 작품 각각의 독창적인 특징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참여 작가들의 신작 외에 주요 영상 작품들은 오는 7월부터 서울관 MMCA필름앤비디오에서 특별 상영된다. 아울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와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마련되어 있어 작가들의 세계를 다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전시와 함께 보면 더 유익한 연계 프로그램

참여 작가들의 주요 영상 작품들이 7월 19일부터 8월 20일까지 서울관 MMCA필름앤비디오에서 상영된다. 관람객들은 왈리드 라드의 '우리는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지만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다 (We Can Make Rain But No One Came to Ask)(2006)', 호 추 니엔의 칸 영화제 감독주간 선정작 '여기 어딘가에(Here) (2009)', 권하윤의 2017년 MoMA Doc Fortnight 상영작 '489년', 재커리 폼왈트의 '이미지의 자본론 (In Place of Capital)(2009') 등 총 15편을 만날 수 있다.

미리 만나는 전시

왈리드 라드, 아홉 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 마르완 카삽-바시(Marwan Kassab-Bachi, 1934-2016), 2017, 혼합재료, 가변설치
왈리드 라드는 시리아 유명 화가 마완 카삽 바치(1934-2016)의 작품을 캔버스 뒷면에 모사했다. 마완은 주로 아랍권 국가의 인권을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를 내는 초상화로 표현했던 화가이다. 왈리드 라드는 냉전과 무력 전쟁이 계속되는 아랍 지역의 상황에 주목하며, 이번 신작을 통해 폭력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했다. 또한 동시에 캔버스의 앞면에 장식될 이미지들을 캔버스 뒷면에 그려 예술의 위상을 결정하는 전시 형태를 비판하고자 했다.

호 추 니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제 2권: G-고스트(유령작가), 2012-현재, 2채널 영상 설치, 가변크기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은 호 추 니엔이 지난 5-6년 동안 지속해온 ‘진행형’ 작업으로, 26개의 알파벳으로 나뉘어진 항목을 편집하는 영상 설치 작품이다. 26개의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키워드를 통해 온라인에서 수집된 영상은 자동으로 편집되어 재생된다. 각각의 키워드와 자료들은 동남아시아의 역사, 인류학, 우주론 등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리서치들을 총망라한 프로젝트인 만큼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은 호 추 니엔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권하윤, 새의 연인, 2017, 가상현실 설치, 가변크기
'새의 연인'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기억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권하윤은 리얼리티와 픽션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가상현실(VR)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관객들은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3D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된 개인의 과거 기억을 엿볼 수 있다.

재커리 폼왈트, 파노라마와 법인의 탄생, 2017, 3채널 영상설치, 가변크기
재커리 폼왈트는 19세기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가 1877년에서 1878년까지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한 샌프란시스코의 풍경 사진을 분석했다. 재커리 폼왈트는 이 사진의 복사본을 촬영한 스틸 사진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거대한 화면으로 영사했다. 사진이 만들어졌던 시기가 세계 최초 ‘법인’의 탄생 시기와 맞물린다는 사실에 주목한 작가는 사진의 풍경 속에 숨겨진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이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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