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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 되살아난 대한제국의 빛·소리·풍경

2017-08-31 | VIEW 2495

지난 2012년에 열렸던 <덕수궁 프로젝트>에 이어, 오는 9월 1일부터 11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와 함께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전을 개최한다.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하는 본 전시는 중화전 앞 행각, 함녕전 등 덕수궁 내 7개 장소에서 열리며, 강애란, 권민호, 김진희, 양방언, 오재우, 이진준, 임수식, 장민승, 정연두 등 국내 작가 9인의 신작을 공개한다. 참여 작가들은 대한제국기를 모티브로 덕수궁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대한제국의 발자취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왕궁으로서 덕수궁의 역사는 임진왜란으로 피신을 갔다가 돌아온 선조가 머물면서 시작되었으며,아관파천(1896) 이후에는 고종황제가 거처하며 황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덕수궁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표명한 장소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품은 역사적 공간이다. 건축사적 측면에서도 조선시대 일반적인 궁궐 양식과 달리 전통 건물과 서양식 건물이 공존하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이토록 다양한 층위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한 덕수궁을 수개월간 방문하며, 그 속에 내재된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공간적 특성을 연구하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덕수궁을 표현했다.

전시 동선은 관람객의 입장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우선, 중화전 앞 행각에는 장민승과 양방언 음악감독의 공동 프로젝트 ‘온돌야화(溫突夜話)’가 설치된다. 장민승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한국 근현대 시기의 건축물 및 생활상이 담긴 기록물을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으로 풀어냈다. 여기에 양방언의 음악이 더해져 관객들은 시각과 청각의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석조전 본관과 별관을 잇는 계단 및 복도에는 김진희와 정연두의 작품이 각각 전시된다. 김진희의 ‘딥 다운 – 부용’은 MP3 스피커와 라디오를 해체하고 재조립한 작품으로, 분리된 스피커를 통해 궁궐을 떠도는 다양한 소리를 잡아 관객에게 들려준다. 정연두의 ‘프리즘 효과’는 고종황제와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네 가지 서로 다른 시선을 포착한 사진을 통해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와 덕혜옹주가 처했던 상황과 시대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는 이층 건물인 석어당에는 권민호의 대형 드로잉 ‘시작점의 풍경’이 걸린다. 연필과 목탄으로 채워진 드로잉에 콜라주와 프로젝터 맵핑을 활용해 제작한 석어당 풍경화로, 덕수궁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근현대기 산업화를 거치며 달라지는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담아냈다. 이어서 고종황제의 알현실인 덕홍전에서는 강애란과 임수식의 작품이 설치된다. 강애란은 조선왕조실록과 고종황제가 즐겨 읽던 서적 및 외교문서 그리고 황실 문화와 예술에 관한 자료를 재현하여, 상상 속 고종황제의 서재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을 완성했다. 임수식은 덕홍전에 책가도가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병풍 형식의 ‘책가도389’를 제작했다.
고종황제의 침전이자 승하하셨던 장소인 함녕전에서는 이진준의 영상작업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시리즈 – 불면증&불꽃놀이가 프로젝션 된다. 일제의 침탈 속에 하루하루 불면증에 시달렸던 고종황제의 심경이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된다. 끝으로 전시의 종착점이자 그 동안 일반인에게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에서 오재우의 VR 작품 ‘몽중몽(夢中夢)’이 소개된다. 희망찬 나라를 설계하고자 했던 고종황제의 꿈의 시발점이었던 덕수궁. 오재우는 덕수궁을 여러 사람들의 꿈이 모이는 특별한 공간으로 상정해, 그들의 꿈을 엮어 영상화했다. 관객들은 행각 내부에 앉아 작가가 만든 꿈의 이미지를 VR로 체험할 수 있다.

참여 작가들은 다사다난하고 파란만장한 덕수궁의 역사를 그들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재현하여, 그간 잊혀져 있던 덕수궁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관람객들은 유구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자신만의 빛과 소리를 찾아 그려낸 작가들의 신작을 통해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조우하게 된다. 한국의 문화유산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특별한 시공간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본 전시 프로젝트 이외 9월부터 11월까지 참여 작가를 개별적으로 초청하여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일대일 토크 프로그램이 열린다. 전시를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게 해주는 연계 프로그램으로, 대한제국기의 문화를 살펴보는 세 개의 특별 강연과 한 개의 영상 스크리닝 및 정가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www.mmca.go.kr)

전시 동선 따라 감상하는 9인 9색 프로젝트
1. 중화전 동행각: 장민승, 양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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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승x양방언, 온돌야화(溫突夜話), 2017, 포지티브 필름, 아날로그 슬라이드, 사운드, 가변크기
‘온돌야화’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계·폐회식 음악감독 양방언과 미술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황신혜 밴드 멤버로 활약했던 장민승의 공동 프로젝트이다. 장민승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주한외국공관들, 환구단, 손탁호텔 등 한국 근대시기의 건축물과 당시 생활상이 담긴 사진을 수집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그중 뛰어난 인화·인쇄술을 엿볼 수 있는 수백 장의 이미지를 선정하여, 초고해상도로 촬영하고 특정 부분을 크게 확대해 그 속에 숨겨진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양방언 특유의 감성으로 창작한 곡이 더해져,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완성되었다.

2. 석조전 서쪽 계단: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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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딥 다운 – 부용, 2017, 전자부품, FM튜너, MP3 플레이어, 250x500x100cm
‘딥 다운- 부용’은 MP3 스피커와 라디오를 분해하고 그 부품을 다시 조합하여 만든 작품이다. 관객은 석조전 서쪽 계단에 설치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대면할 수 있다. 단단한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분리되어 밖으로 꺼내진 스피커는 공기에 떠도는 다양한 소리를 잡아내 관객에게 들려준다. 작가는 옛날에도 덕수궁을 적셨을 빗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오래된 나뭇잎의 움직이는 소리 등을 내보내며, 덕수궁이라는 공간에 계속 존재해왔을 여러 흔적들을 표현한다.

3. 석조전 복도각: 정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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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프리즘 효과, 2017, 4 C-프린트, 170x217cm
정연두의 ‘프리즘 효과’는 대한제국 시기의 고종황제와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네 개의 시각을 네 장의 사진으로 구현했다. 작가는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황실 평상복을 제작해 고종황제와 덕혜옹주 역을 맡은 모델에게 입히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두 인물의 사진을 참고하여 분장을 시킨 뒤 사진을 촬영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은 황제와 아버지라는 역할 사이에서 딸을 지키고자 했던 고종을 바라보는 ‘사적인 시선’, 침략자에게 나라를 팔았던 이들의 ‘치욕의 시선’과 그들로부터 나라를 지키려고 한 고종과 그들의 갈등의 시선, 법을 집행하는 한국 최초의 재판소인 평리원(平理院) 청사가 있었던 위치에서 고종과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공적인 시선’, 덕수궁을 중심으로 주변에 퍼져있던 각국 외교공사관과 외국 열강의 입장에서 고종과 덕혜옹주를 바라본 ‘타인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4. 석어당: 권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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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호, 시작점의 풍경, 2017, 건축용 트레이싱지에 연필, 펜 드로잉 및 프로젝션 맵핑, 500 x 300cm
‘시작점의 풍경’은 한국 근현대사를 겪은 덕수궁을 담은 풍경화이다. 연필과 목탄으로 채워진 흑백 드로잉에 부분적인 콜라주와 프로젝터 맵핑을 활용해 새로운 석어당 드로잉을 완성했다. 작가는 대한제국의 중심이었던 덕수궁 일대를 바라보는 본인의 관점과 근현대적인 요소를 혼합했다. 그래서 ‘시작점의 풍경’을 살펴보면, 서울역, 적산가옥, 최초 증기기관차 모갈1호 등 산업화의 상징적 요소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5. 덕홍전: 강애란, 임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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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란,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 2017, 혼합매체, 가변크기
고종황제는 자신의 서재에 어떤 책이나 물건을 두었을까? 강애란은 이 질문에서 이번 작업을 시작했다. 빛을 발산하는 100여 권의 디지털 북과 실제 서책, 오래된 가구, 영상 등으로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을 구성했다. 또한 태조부터 고종에 이르는 조선시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사료집과 고종이 즐겨 읽던 서적 및 외교문서, 대한제국 시대의 황실 문화, 예술, 건축, 음악 등에 대한 자료를 재현하여 배치했다. 가상의 고종황제 서고를 통해 관객들은 고종황제의 소소한 취향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당시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되짚고, 고종황제가 꿈꾸었던 이상향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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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식, 책가도389, 2017, 병풍, 보존용 잉크젯 프린트, 210x640 cm
‘책가도’는 책과 책장을 중심으로 문방사우 및 화훼, 기물들을 그린 그림으로, 학문을 권장했던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조선 후기 회화의 한 형태이다. 임수식은 개인의 책장이 인문학적 초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2007년 처음 본인의 책장 촬영을 시작으로 책가도 연작을 제작했다. 이번 ‘책가도389’는 이러한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고종황제의 집무실에는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 고종이 애지중지했다는 덕혜옹주의 사진도 있지 않았을까 등과 같은 다양한 물음을 갖고 제작했다. 아울러 작가는 이번 작품을 위해 한국 근대사와 대한제국을 연구하는 건축, 미술 관련 분야의 학자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서재를 촬영했다. 그리고 본인이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한 대한제국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조합하여 사진 형식의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6. 함녕전: 이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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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준,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시리즈 - 불면증 & 불꽃놀이, 2017, 6채널 영상설치, 가변크기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시리즈 – 불면증 &불꽃놀이’는 고종황제가 승하했던 장소인 함녕전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영상과 사운드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작가는 과거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시절 벽에 부딪히는 블라인드 소리를 듣고 처음 제작했다는 영상작품 ‘불면증(2006)’과 일본에서 불꽃놀이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의 탄성과 불꽃 이미지를 촬영한 ‘하나비(2017)’ 영상을 모아 재구성하였다.
작가는 고종황제가 일본에 의해 억류되어 생을 마감한 이 장소에서, 당시 고종황제가 느꼈을 무력감과 황제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감춰진 허망한 불안감 등을 영상과 곳곳에서 들리는 사운드의 부조화로 풀어낸다.

7. 함녕전 행각: 오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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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우, 몽중몽(夢中夢), 2017, VR 비디오, HD 비디오, 5분, 가변크기
‘꿈속의 꿈’이라는 뜻을 담은 '몽중몽'은 덕수궁 일대를 무대로 한 오재우의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과 영상 작품이다. 작가는 고종황제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장소인 덕수궁을 ‘여러 꿈들이 모인 특별한 공간’으로 상정하고, 여기에 본인의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작가는 황현(1855-1910) 선생이 썼던 글에 남겨진 기존 체제를 옹호하는 자들의 입장, 개혁파들이 보였던 미래에 대한 의지, 더 이상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왕의 입장들을 엮어서 전통과 현재를 잇고자 시도한다.
관람객들은 함녕전 행각 내부에 누워 VR 기기를 쓰고, 꿈의 공간인 덕수궁 곳곳을 홀로 돌아다니게 된다. 그들은 작가가 펼쳐놓은 세상과 일대일로 마주하며, 기억 속 덕수궁과는 다른 몽환적인 잔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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