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S SKETCH

내가 그리는 국립현대미술관

2017-06-30 | VIEW 2869

국립현대미술관 (MMCA) 관장직을 수행한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한국행이 무척 매력적인 기회이자 멋진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술관을 위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계획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미술관으로,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비교해도 수년 앞선 1969년에 개관하였습니다. 시설 면에서는 그간 서울관 개관 등으로 내로라할 만한 규모를 자랑합니다만 이를 운영할 시스템의 측면은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띕니다. 바로 이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우리 국립현대미술관 구성원들과 함께 남은 임기 동안에도 계속해서 고민해 나가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 최고 수준의 기관으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관객 중심의 미술관으로, 한국 현대 문화의 중심이자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소장품 중심의 미술관과 담론을 생산하는 미술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부 미술관은 두 역할 모두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최고 수준의 기관으로 자리하게 하기 위해 미술관 고유의 담론을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독창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메시지의 생산지로 만들고자 합니다. 다수가 이해하고 향유하며, 전문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담론과 메시지가 샘솟게 하겠습니다. 전시 기획은 3년에서 5년 정도 미리 이루어져야 하고, 한국 사회 및 세계 지성들의 관심사인 미적, 지적, 역사기술적 쟁점들을 다루는 주요 예술 논의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세계 유수의 정상급 제작자들과 협력하며, 아티스트나 파트너들이 최고의 전시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세계적 담론’ 속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의 시각을 대변하는 명확한 목소리를 갖고 지속적인 공헌을 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바탕하여 미래를 향한 상상력을 펼쳐나갈 최적의 방안입니다. 모든 개개인이 그러하듯, 문화나 공동체도 일련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고립된 채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 시민의 지위를 포용하고 즐기며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메시지, 내러티브, 이야기, 은유, 역사 등을 생산해 내고, 국제무대 및 세계적 논의에서 우리의 지성을 발휘하여 의견을 교환하고자 합니다. 이는 전시회, 공공 프로그램, 출판물 등 다양한 형태로 가능합니다. 최고 수준에서 일한다는 것은 탁월하고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서울관(좌), 덕수궁관(우)
미술관이 자동차라고 한다면 예산은 기름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산의 적절한 뒷받침 없이는 미술관의 원활한 운행은 어렵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재정적 현실은 우리 미술관이 국제 수준으로 높이 도약하는 데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재정 측면의 보강을 추진하고 이와 함께 행정적 규정을 미술관의 중장기 계획을 지원하고 북돋우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고자 합니다. 또한, 사전 주도적 운영을 통해 미술관이 애초 목표했던 야심 찬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운영 부문을 비롯하여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획득한 직원들이 순환 이동하는 정책은 미술관 조직 운영에 필수적인 노하우 축적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조직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전문 지식을 집적시킬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구조화하여 창의적으로 운영해 나가고자 합니다. 전문화가 아니면 도태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으므로 각 부서들이 정밀하게 설계된 네트워크 내에서 하나의 유기체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우리 미술관은 관객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더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고자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미 여러 우수한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예술계를 넘어 보다 넓은 의미의 관객들이 이해 가능하고 향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미술관의 프로그램은 예술작품의 난해함과 상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통에 필요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더욱 정교화하고, 세분화된 관객층과 끊임없이 대화해 나가고자 합니다. 복잡한 컨텐츠, 다면적 전시, 난해한 작품, 다의적 생각의 묘사 및 표현이 관객과 충돌하지 않고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 들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미술관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는 조부모, 부모, 현 세대를 넘나드는 백년이 넘는 미술사를 아우르고, 우리 후손이 만들어나갈 역사까지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전통, 고전주의, 단절, 혁신 및 그 밖에 아직 명명되지 않은 것들을 다룹니다. 우리는 미술관을 통해 역사가 예술을 만들거나 우리 존재를 규정짓지 않지만, 인간이 역사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예술이 역사 밖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며 미래를 상상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미술관은 소수가 아닌 다수와 소통해야 합니다. ‘소통’이란 단순히 언어나 단어의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몸짓, 가치관, 귀 기울이고 대답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일방통행이 아닌 다방향이자, 피부 접촉과 같은 것입니다. 20세기에 예술가들이 전시 방면에서 혁신을 일구었다면, 21세기에는 관객들이 미술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며 진화시키는 주체가 될 것입니다. 종전의 미술관이 고요한 가운데 그림을 ‘보는 시설’ 에 그쳤다면, 오늘날 미술관은 시각, 촉각, 청각적 기반의 다양한 상황 및 감정 유형을 생성합니다. 그림과 작품, 역사와 미(美)를 다루는 우리 미술관은, 음악, 가상 현실, 연극, 무용, 문학, 영화, 건축, 디자인까지 그 대상을 점점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액자에 끼워져 있어 그 내부를 그림으로 인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형태의 예술이 아직도 틀이 둘려 있지 않아 우리가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얻기 위해 미술관에 갑니다. 오늘날 한국은 기술 면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 중 하나입니다. 우리 앞에 다가온 제 4 차 산업 혁명은 한국에게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더욱이 고도화된 로봇과 인간 노동의 축소는 지속적인 교육과 새로운 창의적인 지식인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미술관은 더 이상 값 비싼 작품을 보관하는 금고가 아닙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된 대학의 역할을 수행할 사회적 지성으로 기능해야 하는 매우 능동적인 공간입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비판 정신을 키우는 공공장소입니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 정도는 단순히 수출 수치로만 재거나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경제는 수출과 세계 시장에 의존도가 높은 데 반해, 한국 고전 및 교양 문화는 해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K-Pop이나 영화 같은 산업화 된 대중문화는 아시아권에서 성공을 거두며 하루가 다르게 전 세계적으로 시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공공 문화,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이용 가능한 최고 품질의 문화를 다듬고 발전시키는데에 전념하는 기관입니다. 한국 미술을 국제화한다는 것은 세계적 담론 속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많은 한국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거나 발전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미술작품이 생산되고 전시되는 중요한 무대 중 하나로 인식되어야합니다. 저는 한국 미술을 국제화한다는 것은, 전세계의 전문 관객들에게 한국 미술이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시각에서도 미술을 보다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우리 시대의 한국 및 세계 미술에 확고한 긍지와 심취를 표현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은 미술 관련 기반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공공 및 사설 박물관이 한국 전역에 걸쳐 비교적 많이 분포되어 있고, 서울은 여타 서구권과 비교해도 가장 많은 미술 기관을 보유하고 있는 수도 중 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를 국제무대에 올리거나 홍보하는 측면은 미흡하다는 점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미술계를 세계화한다는 것은, 세계미술의 중심에 한국 미술의 창조성과 담론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단기간의 유행이나 상업적인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최근 특별하고도 중요한 역사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새로운 별자리가 하늘 높이 새겨졌습니다. 미술을 우리 생활의 중심에 아로새기고자 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행보에 많은 조언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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